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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5화: 어둠에 비치는 한 줄기 빛
동방홍마향
난이도 Tutorial
동행자 플랑도르 스칼렛
5. 어둠에 비치는 한 줄기 빛
도서관의 문을 열고 망설임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도르는 끝까지 들어가 그 곳에 앉아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무슨 일일까?”
이전과 마찬가지로, 파츄리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돌은 신경쓰지 않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
“아…”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까 사쿠야와의 대화로 슬픔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두려움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좀처럼 말하지 않자, 파츄리가 책에선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당신이 플랑도르 스칼렛이 아니라는 얘기일까?”
라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도르의 사고는 한순간 정지했다.
“에…?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 레미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뭐, 내 추측이지만.”
레밀리아를 레미라고 부르는 걸 보아 파츄리는 꽤 레밀리아와 친한 것 같다. 하지만 시선을 돌릴 생각은 여전히 없다는 듯 책을 계속 읽으면서 파츄리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래서? 레미가 뭐라고 했어?”
“플랑의 몸을 돌려놓고 그 후에… 죽으라고”
‘절대, 절대 플랑이 그렇게 두지 않아!!’
도르의 머릿속에서 플랑이 필사적으로 외치지만 도르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
돌아온 대답은 단 두 글자. 이 반응은 사쿠야와 이야기 했을 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오히려 파츄리가 관심이 없을 거라곤 첫인상부터 알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대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그대로 플랑이라고 불러?”
“아, 아니, 지금은 도르라고 하고 있어요. 플랑도르의 도르…”
“…그거 진심이야?”
처음으로 파츄리가 조금 당황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도르 역시 당황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자 파츄리는 아, 라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 알고서 한건… 아닌가.”
파츄리는 처음으로 시선을 도르에게 향했다. 보라색 눈동자에 금발의 어린 소녀가 처음으로 비쳤다.
“도르는 왜래어로 뜻은… 인형. 마음이 없이 그저 움직이기만 하는 존재. 뭐 그런 의미야… 지금의 그대에겐 딱 맞는 말일지도.”
전신의 피가 어는 감각. 체온이 떨어지고 머릿속에서 단어가 반복된다.
도르의 뜻은 인형.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자신은 침착했다. 마치 자신이 인형임을 인정하는 듯한…
따지고보면 맞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단지 이 몸을 플랑에게 돌려주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돌려준 후, 자신은 죽을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부당하다고 화내거나 죽음에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도르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 도르의 마음은 약해지고 있었다.
파츄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제 더 이상 관심이 없는지 다시 책을 읽고 있다.
“안녕, 파츄리.”
나온 말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도 떨리지 않았지만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도르는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지난 번 만난 소악마는 만나지 않았다. 그대로 책장 사이를 지나 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미안해… 플랑은 모르고…’
플랑의 사과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은 그 때였다. 멈춰서서 눈을 감는다. 이렇게 있으면 플랑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알고있어. 플랑이 그럴 생각이 없었단 것은. 화 안났으니까 괜찮아.”
플랑은 495년동안 감금되었다. 그런 그녀가 도르라는 말의 의미를 알 리가 없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면 플랑이 도르라는 이름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를 생각 할 줄 아는 착한 소녀. 플랑과 만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도르는 플랑이 매우 착하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그대로 도르라고 불러야 해? 아니면 유우라고 부르는 게 좋아?’
“아니, 그대로 도르로 괜찮아. 플랑이 처음 지은 이름이니까.”
도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더라도 도르는 플랑이 자신을 위해 머리를 짜내며 지어준 이름이다. 그것을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좋아할 정도이다.
‘그, 그래. 도르가 괜찮다면 나도 좋아…’
플랑은 아직 납득하지 못한 듯 했지만, 그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대로 로비로 향해 현관을 연다. 이번에는 저번의 우산은 쓰지 않는다. 올려다보면 그곳에 태양은 없고 붉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햇빛이 쏟아지지 않기 때문에 도르는 신경쓰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목표는 현관. 그 앞의 붉은 머리의 여성. 도르의 정체를 알리지 않은 홍마관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요괴.
큰 나무격자 문을 열고 그 바깥의 여성을 찾는다. 지난 번처럼 왼쪽을 바라보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홍 메이링은 도르를 발견하자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걸어가면 몸을 구부리고 눈높이를 도르에게 맞춰주었다. 이런 사소한 점에서도 그녀의 상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러세요?”
“메이링, 할 말이 있어.”
물끄러이 그 눈을 쳐다보고 각오한다. 레밀리아에겐 삶을, 사쿠야에겐 슬픔을, 파츄리에겐 인간성을 부정당했다. 이제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임무를 마치면 사라질 인형이니까.
“나는 플랑이 아냐. 나는 도르. 플랑의 몸을 빼앗은 전혀 다른 인간이야.”
‘도르…’
플랑의 슬픈 목소리가 머리에 울린다. 그러나 이제 자신은 도망칠 수 없다.
도르의 말을 들은 메이링은 잠깐 침묵했다. 도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메이링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놀라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비난이 올 것을 상정하고 도르는 치마 자락을 꼭 잡는다.
“…저”
그러나 돌아온 것은 예상보다도 차분한 목소리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면 메이링은 같은 눈높이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이링의 눈동자는 걱정스러운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울 것 같은 얼굴로 떨고있는 건가요?”
“에?”
그것은 오늘 가장 큰 충격이었다. 너무 의식하지 않은 탓에 바보같은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
슬픈 얼굴? 떨고 있다? 자신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갑자기 따뜻한 느낌에 휩싸인다. 눈 앞에는 빨간 색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동생 님이 아니라고 해도 처음 이 관에서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면 저도 슬퍼집니다.”
메이링의 고동이 온몸에 울린다. 따뜻한 감각이 온 몸에 퍼져온다. 이 세계에 와서 안긴 적은 처음이었다. 이런 감각을 맛본 것은 이전 세계에서 어머니와 포옹할 때 뿐. 그것과 같은 따스함을, 도르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플랑이 아니라고?”
“여동생 님께는 죄송하지만,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여동생 님에게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게다가 제가 처음 만난 당신은 언제까지나 당신이라구요?”
즉답했다. 메이링에게 도르는 처음부터 도르였다. 예전부터 플랑을 알던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소문으로만 알고 있던 정도. 그러니까 그녀는 처음으로 만난 것이 플랑의 모습인 도르였다고 해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도르는 도르인 채 그대로니까.
“가르쳐주세요.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도르. 플랑도르에서 플랑은 진짜 플랑이고, 나는 도르라고 받았어.”
“받았…다고요?”
“응. 플랑에게.”
도르의 말에 메이링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진다.
“서, 설마…”
“아, 응. 안 믿을 지는 모르겠지만 플랑은 내 안에 있어.”
입을 우물거리다가 가만히 도르를 바라본다. 메이링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 그 여동생님, 아까 그 말은…”
‘무우, 좀 심한 거 아닐까… 뭐, 도르를 달래준 건 좋지만…’
마음 속으로는 불만이지만 아무래도 플랑은 화가 나진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메이링에게 전하면, 마음으로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일단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세요. 제대로 된 앉을 곳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만…”
땅을 손으로 가리키며 메이링은 주저앉았다. 도르도 옆에 따라앉았다.
“여동생 님은 광기에 휩쓸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당신이 억누르고 있는 건가요?”
“응… 특별히 뭔가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광기 같은걸 느낀 적은 없어.”
‘플랑도 지금은 문제없는 것 같아.’
“플랑도 지금 자신은 문제없다라고 해.”
“음…”
턱에 손을 얹고 메이링은 깊게 생각한다. 그러나 더 고민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는지 금방 손을 떼었다.
“뭐, 광기가 없다면 문제는 없겠죠. 그래서 도르는 어떻게 할 건가요?”
“일단은 플랑에게 몸을 돌려줄 방법을 찾으려고 해. 역시 이대로는 좀 그렇고…”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메이링의 말문이 막힌다. 물론 플랑의 몸을 돌려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금 상황과 홍마관의 구성원들과의 관계는 여러 가지로 좋지 않다. 그것은 도르도 알 수 있었다.
“그래, 역시 관의 모두가 나를 믿게 하지 않으면.”
플랑을 되돌린다고 해도 이대로는 안된다. 플랑과 관 주민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말았다. 메이링은 우호적이지만, 레밀리아, 사쿠야, 파츄리 세 명과의 관계는 절망적일 정도다.
“도르 씨.”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메이링은 말을 걸어왔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말해주세요. 저는 문지기니까 여기서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의 친구니까요.”
메이링의 말에 도르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는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돌린다.
작은 소리이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부끄러운지 일어나 문으로 향한다.
“다음에 봐, 메이링.”
“네.”
메이링을 힐끗 보면 그녀는 미소지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도르도 미소짓고 문을 향해 걸어간다. 조금 전과 달리 그 마음을 맑게 개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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