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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37화: 그녀가 잃은 것은
동방화영총
난이도 Extra
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11. 그녀가 잃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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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닫이 문을 열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오랜만이다. 마을에서 얘기하다가 조금 늦어버렸지만, 지금부터라도 자 버리자. 그렇게 생각하며 방 문을 열었을 때, 아야는 말을 잃고 말았다.
좁은 방에, 다섯의 카라스 텐구가 이미 있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왜 그들이 여기에 있지? 문단속은 완벽했다. 그런데?
“어서와, 아야.”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 것은 아야의 동료 중 한 명이었다. 싫을 정도로 익숙할 정도인 동료 중 한 명.
아야는 그가 싫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몰라서 기분이 나빴다.
“여성의 방에 무단으로 침입하다니, 무슨 생각이에요?”
분명한 적의를 표출한다. 이제 아야는 이런 것은 지긋지긋했다. 그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자고 싶었다.
“하지만, 샤메이마루 아야, 너를 요괴의 산의 규정에 따라 죄인으로 데려오라고 명령받아서 말이야. 살아있으면 된다고 말했으니까… 괜히 저항하지는 마?”
“…뭐?”
멍하던 머리가 각성한다. 지금 뭐라고 했지? 죄인? 누가?
“요괴의 산은 싸움에 불간섭 하는 게 원칙. 그런데 관여했지?”
“도르 스칼렛.”
그 말에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이해했다. 요괴의 산은 도르를 알고 있다. 그것은 즉,
“…그야, 거절합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도르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 새어나갔는가. 그것은 자신밖에 없다.
“요괴의 산을 위해 도르 스칼렛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위한 열쇠가 뭔지는 알지?”
“…거절!”
그 말에 아야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다섯 정도라면 상대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깨달았다. 실수였다. 피곤해서 미리 깨닫지 못했다.
현관을 뛰쳐나와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아야의 집 주위를 수백 명의 텐구가 둘러싸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늦었다.
“제길!”
분한 듯 외치며, 아야는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노력한다. 하늘은 날 수 없다. 날개를 쓸 수 없는것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공중의 대비는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을 믿고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요괴의 산이 자랑하는 전력 중에서도 아야의 전투력은 차원이 달랐다. 그런 그녀가 날개를 사용할 수 없는 정도로 잡힐 이유는 없었다. 포위에서 도망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쉽게 도망칠 수 없었다. 계속해서 빠져나가도 점점 적들이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친하게 대화했던 마을 주민들도 무표정하게 덤벼온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로 가야 도망칠 수 있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대체 어디로 가야 안전할 수 있는 것일까. 어디서도 이 큰 무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 것은 무리다.
“아차…”
생각하는데 너무 신경을 썼다. 정신을 차리면 눈앞에는 세 마리의 백랑 텐구가 있었다. 칼들 든 이들을 어떻게 하기엔 이미 너무 가까워졌다.
“윽…”
당했다. 라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날라온 돌풍이 그들을 날려버렸다.
대체 뭐지? 그렇게 생각하며 바람이 날아온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아야 씨! 괜찮나요! 이쪽이에요! 도망쳐요!”
후배에게 손을 붙잡여 아야는 끌려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질문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어, 어째서 당신…”
“그야 아야 씨를 구하러 온 게 당연하잖아요! 아야 씨가 죄인이라니, 그럴 리가 없어요!”
후배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까지 친했던 모두가 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만은 내 편으로 남아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든든했다.
두 명은 숲을 빠져나가 동굴 입구까지 달렸다. 하늘을 날지 않는 것은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에조차 아야는 기쁨을 느꼈다.
“여기를 빠져나가면 일단 요괴의 산에서는 나갈 수 있어요! 그대로 어디론가 도망치죠!”
“하, 하지만 이대로는 당신까지…”
“저는 아야 씨와 함께 가겠습니다.”
“…”
눈물이 흐를 뻔 했다. 어서 가죠, 라고 말하며 그녀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쨌든 그녀를 따라가자. 그리고 다시 감사 인사를 하자. 고마워요, 라고. 희망을 찾아낸 아야의 눈동자의 빛은 강해졌다.
동굴 속은 당연히 불빛이 없기에 어두운 길을 위태롭게 걸어갔다. 언제까지 걸어도 빛이 보이지 않는데 길이 지하에 있는 것일까.
“저, 그런데, 언제쯤 나갈 수 있는거야? 그리고, 이거 어디로 가는거야?”
“아야 씨, 어두운 건 알지만 불빛은 켜지 마세요. 놈들에게 들킬 거에요. 게다가 얼마 안 남았어요.”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아야는 후배의 말을 따랐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그렇게 조금 나아가자 갑자기 무언가에 부딪혔다.
“어, 어째서 멈춘거야? 설마 누군가에게 들킨거야?”
아야는 후배를 걱정하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심쩍게 생각되어, 아야는 후배를 호위하듯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요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뭐지?
“불빛, 켜요. 아주 조금만.”
이렇게 말해도, 후배는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불을 밝혔다.
그리고 말문이 턱 막혔다.
눈앞을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길을 막은 것처럼. 붕괴라도 일어난 것일까. 아니, 이건 오히려-
“잘가요, 아야 씨.”
끔찍한 소리가 났다. 고기를 써걱 찢는 듯한 소리가. 동시에 허리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뜨겁다, 아프다, 뜨겁다, 아프다. 시야가 흔들린다. 쓰러지기 직전 벽을 다시 보고 아야는 이해했다. 붕괴된 것이 아니다. 이곳은 막다른 길이다. 이 동굴은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었다. 아야는 바닥에 쓰러졌다. 목만을 움직여 뒤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과연 아야 씨군요. 가장 강한 마비약을 사용했는데, 아직도 움직일 수 있다니, 굉장하네요.”
“어…째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에 후배는 웃는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뒤틀린 미소로.
“왜? 왜냐고요? 아하하하! 그야, 그런 백랑 텐구 따위가 공을 차지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 그렇죠. 마을의 모두가 말했어요. 가장 먼저 당신을 잡은 텐구가 우승이라고. 이건 게임이에요. 게임. 아야 씨 참 재밌네요. 그렇게 순진하게 저를 완전히 믿다니요. 저라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나요? 왜죠? 아 그랬죠… 제가 아야 씨의 첫 수제자니까요. 기대했죠?”
난폭하게 머리채를 잡혀 들어올려진다. 몸이 마비된 아야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얼굴을 들여다보는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 아야가 알던 후배의 모습은 없었다.
“솔직히 짜증났어요. 뭔지 알아요? 나보다, 아니, 마을의 모두보다 강하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는 당신을 스승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건 그렇고, 아직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네. 저기, 아야? 이 산에는 네 친구도, 동료도 없어. 처음부터, 처음부터 하나도 없었다고! 아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으며, 후배는 아야의 옷덜미를 잡는다. 그대로 아야를 질질 끌고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텐구가 기다리는 절망의 입구로.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의식도 몽롱하다.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한다.
눈을 감기 직전, 한 소녀가 보였다. 그것은 환상, 최후에 아야의 머리에서 보인 현실이 아닌 광경. 그 소녀, 도르 스칼렛은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예쁜 미소를 자신을 향해 지어주고 있었다. 그 광경은 눈꺼풀이 닫히며 사라졌다. 깜깜한 세계로 떨어져 간다. 의식을 잃기 직전, 아야는 깨달았다.
자신이 잃은 것은 수많은 친구들 중 하나가 아닌 단 한명뿐인 소중한 친구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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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화영총 끝. 다음챕터 풍신록 넘어가기 전 다른 거 한두개정도 할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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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36화: 날 수 없는 무녀와 마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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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10. 날 수 없는 무녀와 마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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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 보니 신사의 위화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주거의 불이 꺼져 있다. 부재중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도르는 주거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주거의 뒤에는 공간이 조금 있다. 왠지 레이무가 그곳에 있다는 느낌으로 도르의 발은 자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대로 레이무는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집 뒤에는 청소용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레이무는 청소용구를 들고 있지 않았다.
아니, 청소용구는 물론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뛰고 있었다. 날고 있던 게 아니라, 도움닫기를 하며 뛰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광경이었다. 몇 번이나 뛰곤 땅에 부딪힌다. 레이무는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강박에 사로잡힌 듯 같은 일을 반복하는 레이무를 보며, 도르에겐 의문이 떠올랐다.
왜 레이무는 날 수 있을 텐데 날지 않는 것일까, 라고.
처음엔 높이 뛰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것보다 뛰는 것이 더 편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도르는 물었다.
“레이무? 뭐… 하는 거야?”
순간 레이무가 쳐다봤다. 얼굴에 진흙이 묻은 채 옷도 너덜너덜해진 레이무가 반야같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도르는 그 표정을 보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도르를 덮쳤다.
“도르, 왜… 왜 여기 있는거야?”
“어… 레이무에게 이번 일을 사과하고 싶어서…”
“…별로 신경 안 써. 지금은 누구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 미안하지만 돌아가.”
“그, 그치만…”
놀라울 정도로 레이무는 차가웠다. 그래도 도르는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신경한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저기 레이무… 혹시 날 수 없게 된 거야?”
실언이었단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완전히 도르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레이무는 다시 뒤돌아봤다. 이번에는 분노의 표정으로. 그대로 빠르게 도르에게 접근했다.
“그래! 유유코랑 싸운 후에 위화감이 느껴졌어. 카자미 유카랑 싸울 땐 더 이상 마음대로 날 수 없었고, 싸움 이후에는 완전히 날 수 없게 되었어. 하늘을 나는 정도의 능력이 사라졌어.”
“뭐… 그러면 같이 연습해서 다시 날 수 있도록…”
도르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번개같은 움직임으로 레이무는 도르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내던졌다. 등에 오르는 충격에 도르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레이무는 보지 않은 듯 했다.
“태평하고 좋네 도르 스칼렛!! 날지 못하는 나 대신 카자미 유카를 쓰러트리고, 이변을 해결하고, 이번엔 나까지 돕는 거야? 구역질이 날 만큼 상냥하네. 너의 그 의식없는 말은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고! 으으… 거슬린다고!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고!”
“그, 그렇지 않아!”
변명하는 도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레이무는 도르를 그대로 옆으로 던졌다.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무릎을 긁히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레이무의 말에 받은 마음의 상처가 더 깊었다.
“다가오지 마! 이제 너랑은 전혀 관계없어!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능력도 잃고, 하쿠레이의 무녀도 그만두게 되겠지. 요괴 퇴치를 할 수 없는 무녀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분노에 물든 레이무의 눈이 도르를 바라보며 일그러졌다. 그 눈은 정상이 아닌 탁한 빛을 띄고 있었다.
“그래! 네가 무녀를 하면 되겠네! 흡혈귀 무녀라니 멋있잖아!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겠지. 틀림없이 모두 기뻐할 테고! 나 따위는 금세 잊고, 모두들 너만 기억하겠지.”
“무슨… 말이야…”
레이무의 얼굴을 보고, 도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레이무는 울고 있었다.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우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울고 있었다.
“괜찮잖아. 다들 행복하고! 내가 죽든말든 상관 없잖아!”
“그렇지 않아…”
점점 비굴해져가는 레이무의 발언을 지금의 도르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도르가 보이지 않는 듯 레이무는 목청껏 운다.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한 미소로.
“아무것도 없는 나같은 건 없어져도 좋잖아! 어차피 잊혀질 테고, 있어도 의미도 없는데! 이렇게 보기 흉하게 연습한다고 해도 사라진 것은 돌아오지 않아! 쓸데없잖아! 내가 없어졌다고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텐데!”
“내가! 내가 슬퍼해!”
목이 쉬어도 상관없다. 목이 메어도 상관없다. 도르는 울먹이며 최대한 목청껏 외쳤다. 평소의 도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소리에 자포자기했던 레이무도 놀란 고양이같은 표정을 지었다.
“비록 모두가 슬퍼하지 않는대도 레이무가 사라진다면 내가 슬퍼할거야! 매일매일 울거야! 잊을 리 없어! 잊을 수 있을 리도 없어! 비록 레이무가 능력을 잃어도, 하쿠레이의 무녀가 아니고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니라고 해도 난 절대 잊지 않을거야!”
“…도르는 몰라! 날 수 없게 된 내 마음을 알 리가 없잖아!”
당황한 레이무가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도르를 과소평가했다. 도르는 이제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그러면 나도 날지 않을래! 레이무랑 같은 게 좋아! 이런 날개 따윈 필요없어!”
오른손을 뒤로 돌려 날개를 잡는다. 차랑 소리가 나는 그것을 최대한 세게 끌어당겼다. 통증으로 비명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뭐, 뭐하는거야! 그만하라고! 그런 짓 해도 전혀 기쁘지 않-”
찰싹 소리가 들렸다. 날개에서 손을 뗀 도르는 최대한 세게 레이무의 뺨을 때렸다.
충격에 빠져있는 레이무를 향해 소리쳤다.
“나도 레이무가 그런 말을 한다고 기쁘지 않아! 뭐가 자기가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는건데! 누가 잊는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읏…!”
레이무도 곧바로 도르의 뺨을 때렸다. 너무 강한 힘에 도르는 순간적으로 넘어졌다.
“네가 뭘 알아! 넌 모든 걸 갖고 있잖아! 너는 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카자미 유카를 쓰러트릴 힘도 있고, 든든한 아군도 있잖아!”
“레이무도!”
아픈 뺨을 부여잡고 도르는 레이무를 노려보았다.
“레이무도 힘이 있잖아! 유유코를 봉인한 것도 레이무의 힘이고! 유카를 이길 수 있던 것도 레이무가 있었기 때문이였고! 게다가, 게다가… 나는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없는거야?”
세찼던 목소리는 끝에 가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그대로 레이무의 어깨를 매달리듯이 잡고, 도르는 타이르듯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투명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레이무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도르의 말이 천천히 레이무의 마음에 스며든다.
“나는 레이무의 힘이 되고 싶어. 알고 있어? 홍마관에서 레이무가 나한테 언제든지 오라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구원을 받았는지. 그 때, 그 후에도 레이무한테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어. 그러니까 난… 이번엔 내가 레이무를 돕고 싶어. 내가 큰 도움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도르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으로 레이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레이무의 마음을 흔든다.
“도르가… 도르는 도와줄거야?”
레이무의 눈을 보고 도르는 명확하게 대답했다.
“도와 줄게. 그러니까 함께 노력하자.”
“함께…?”
함께 노력하자는 한마디로 레이무의 마음의 벽은 허물어졌다. 억지로 가둔 감정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레이무의 어깨가 떨린다.
“말한적 없어… 마리사한테도… 유카리한테도…”
“…”
눈에서 뚝뚝 흐르는 눈물이 땅바닥을 적셨다.
“무서웠어… 능력이 사라졌단 걸 말하는 걸… 요괴를 퇴치할 수 없다는 걸… 내가 부정되는 것 같아서… 설자리가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도르는 작은 몸으로 레이무의 머리를 감쌌다. 상냥하게, 부드럽게 감싸 등을 쓰다듬었다.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었어! 누군가 도와주길 바랬어! 카자미 유카 때도, 그 후에도 계속… 계속… 불안했어…”
“그래… 그래…”
도르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레이무를 껴안아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도와줘… 도와줘 도르…”
“그래, 도울거야. 절대로 도울거야. 함께 힘내자.”
“함께…”
이날 레이무는 누군가의 앞에서 처음으로 큰 소리로 울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천재라고 치켜세워지며 지나친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이지 않은 레이무. 더 이상 날지도 못하게 된 그녀지만 대신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드디어 그녀의 나이대의 소녀가 가질 공간이 생긴 것이다.
도르 스칼렛 앞이라는, 그녀만의 장소가.
“제발… 부탁이니까 잊어줘…”
그로부터 몇시간 뒤 레이무와 도르는 주거의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두 명의 옆에는 차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처럼 흐느껴 울던 레이무였지만, 곧 평정을 되찾자 그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그 홍조는 툇마루로 이동할 때까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금도 지난 번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못 잊을 것 같은데… 엄청 귀여웠고.”
“그 상냥한 미소가 지금은 괴로워…”
어깨를 푹 떨구며, 레이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무의 약한 부분을 알게되어 도르는 기뻤다.
조금 짖궂은 것도, 이번엔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치만, 레이무, 지금 귀엽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도르는 생각을 전환한다. 레이무의 현재 상황, 그리고 그것이 일어난 원인을.
“그러면 레이무, 언제부터 능력이 사라진거야?”
“음, 분명히 스이카의 건이 끝나기 조금 전부터였나? 그때부터 날 때 위화감이 들었어…”
스이카의 건은 얼마 전 봄, 그때부터 이미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이후 카자미 유카의 건으로 인해 이젠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그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전혀 날 수 없는거지?”
조금 말하기 거북한 듯 도르는 물었다. 말을 돌려서 하려고 했지만, 도르에겐 그럴 어휘력이 없었다.
그러나 레이무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답한다.
“그래. 전혀 날 수 없어. 그렇다고 해도, 별로 신경 안 써도 돼. 이제 홀가분해졌어. 누군가가 상냥한 덕분에… 능력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돼.”
“그렇구나…”
레이무의 말을 바탕으로 도르는 다시 생각한다. 능력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환상향에 존재하는 능력을 도르는 책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정도의 능력”
환상향에서 능력이라면 기본적으로 그것을 나타내는 정도로 생각해도 좋다.
이 세계에 사는 주민들은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 “정도의 능력”이라고 부르는지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눈앞의 레이무. 그녀가 가진 능력은 “주로 하늘을 나는 정도의 능력”이다.
마리사는 “마법을 쓰는 정도의 능력”, 앨리스는 “인형을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이라는 식으로 “정도의 능력”이 어미에 반드시 붙는다.
그렇지만 도르는 이 정도의 능력이라는 표현에 대해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
확실히 아까 언급한 세 명은 “정도”라고 붙여도 좋을지 모르지만, 예를 들면 그녀의 가족인 이부키 스이카.
그 능력은 “밀도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이고, 요괴의 현자, 야쿠모 유카리는 “경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 영원의 공주, 호라이산 카구야는 “영원과 수유를 다루는 정도의 능력”이다.
말만으로는 어떤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스이카 왈 “모을수도 있고, 뿌릴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또 유카리 왈 “모든 경계를 만질 수 있어.”
모든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전부다. 게다가 카구야도 말하길 “내 능력은 확실히 이해하기 어렵네. 뭐 간단히 말하면 시간을 굉장히 짧게 하거나 매우 길게 하거나 할 수 있는거야.”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도르가 생각한 것은 하나. “정도가 뭐지?”라는 생각이다.
그 밖에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칙 급 능력의 소유자가 많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쉽게 설명한 뒤 “뭐,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활용할 수 있지만.”라고 적당히 말하기 때문에 더욱 성질이 나쁘다.
그리고 이 능력의 곤란한 점은, 원래부터 발현하지 않는 사람이나 요괴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에 따라 능력의 강함은 다르지만, 사실 도르 스칼렛은 이 정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원래 정도의 능력은 어떻게 판별하는지 모르지만, 유카리가 말하기를 자신에 대해 “정도의 능력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 간단한. 라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행해 본 결과 변화없음이었다.
들리는 것은 플랑의 목소리 뿐. 즉 도르에게는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마을에도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에 따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진짜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치만 혹시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르는 다시 책의 내용을 떠올린다.
수많은 정도의 능력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그 중 능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책은 하나도 없었다.
그보다, 정도의 능력은 진화도 퇴화도 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성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능력 그 자체가 변하는 경우는 없다.
즉 레이무의 “주로 하늘을 나는 정도의 능력”이 “과자를 만드는 정도의 능력”이 될 수도 없고, 갑자기 도르에게 “과자를 만드는 정도의 능력”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뭐야 과자를 만드는 능력이라니, 정말 멋지잖아.
또다시 탈선해버리는 생각을 바로잡고, 도르는 다시 고민한다. 레이무가 괜찮을까 이 아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착각일 게 틀림없다.
즉 “정도의 능력”이 사라진 전례를 도르는 모른다. 하지만 도르에겐 이미 해결방안이 있었다. 지금의 레이무만, 레이무밖에 할 수 없는 해결방안이.
“저기, 레이무. 우선 능력이 아니라,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하늘을 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즉 나는 것을 기억하고 그 후에 능력을 되찾는다고?”
과연 하쿠레이의 무녀이다. 머리 회전이 빠르다. 도르의 말에서 순식간에 해답을 얻은 레이무는 수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확실히 좋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나는 방법을 모르겠어. 전에는 적당히 왠지 날고 있었으니까. 도르는 날개로 날고 있지? 움직이고 있고.”
“응? 아니, 날개는 관계 없어.”
확실히 도르가 날 때 등의 보석의 소리가 난다. 하지만 반드시 날개를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걸을 때 손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그것을 레이무에게 설명하면 그녀는 납득한 듯 했지만 곧 언짢은 표정으로 도르의 뺨을 꼬집었다.
“그건 말하자면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다는 거잖아. 아까 날개를 뜯으려고 한 건 뭐야.”
“아, 아니, 아까 그건 흥분해서… 아파! 아프다니까!”
레이무의 손으로부터 해방되어, 눈물을 글썽이며 도르는 뺨을 문질렀다. 틀림없이 빨갛게 변했을 것이다. 심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레이무를 보자 그녀는 토라진 듯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레이무… 화났어?”
“…하아, 뭐, 조금 나긴 했지만 도르는… 그… 나를 받아줬잖아?”
“레이무… 레이무…!”
“잠깐, 하지마! 아, 너, 볼이 매끈매끈… 이 아니라!”
레이무의 말에 감동해 볼을 비비던 도르를 레이무는 필사적으로 떼놓는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거친 숨을 내쉬며 레이무는 중얼거렸다.
“너랑 있으면 항상 이렇게 된다니깐… 어쨌든, 너도 어쩐지 날고 있는 거면 이건 도움이 안되는 거 아니야?”
“응, 어째서 날고 있지만 왜 날고 있는지는 알 수 있어?”
“응?”
힘차게 발을 굴러 땅에 착지한다. 그대로 레이무를 돌아보며 도르는 천천히 떠올랐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리고 레이무…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요력이 없어.”
“그래, 전혀.”
“윽… 물론 마력이나 영력도 없어. 아, 방패나 치유술은 별개야. 파츄리 왈 그건 마력이 아닌 거 같다고 했으니.”
아직도 알 수 없는 방패와 치유술, 두 가지 힘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도르는 장난스레 웃었다. 그 모습에 레이무는 대답을 재촉했다.
“장난치지 말고 알려줘.”
“응. 그러면 레이무. 나는 어떻게 날고 있는 걸까?”
“뭐? 그야 요력을-”
까지 말하고 레이무는 깨달았다. 요력을 이용하여 하늘을 난다.
과거에 하쿠레이의 무녀가 영력으로 비행하던 것처럼 요괴는 그렇게 하늘을 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앞의 흡혈귀 소녀도 물론 똑같다고 단정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관점으로 보면 있을 수 없다. 비행 수단인 요력이 전혀 없는 도르가 날 수 있는 것은.
“잠깐만, 이제 와서지만, 대체 어떻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인데, 아마도 나는 일에 관해선 마력도, 요력도, 영력도 필요없는 것 아닐까.”
참신한 발산에 레이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비행에 요력도 영력도 필요없다니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확실히, 생각해보면 비행의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해명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능성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레이무는 그 의견을 반박할 존재를 하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마리사는 어떤데? 그 녀석은 빗자루가 있어야 하늘을 날잖아.”
“어, 음, 뭐, 그렇긴 한데…”
반대 의견을 내면서도 레이무는 자신의 의견에 그렇게 자신하지 않았다.
마리사가 할 수 없는 것과, 도르가 할 수 있는 것은 설득력이 다르단 것을 레이무는 마음 속 어딘가에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레이무의 불완전한 반대 의견 따위는 아랑곳않고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여기는 환상향. 마음이 아주 중요한 곳. 유카리 씨는 그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마음만으로도 사람은 날 수 있다고.”
그것은 요괴의 현자 야쿠모 유카리의 말버릇. 이 환상향에서 중요한 것은 힘도, 능력도, 기술도 아닌 순수한 마음이라고.
유카리는 그렇게 믿고, 몇 번이나 그 취지를 말했다. 그것을 도르는 잘 알고 있다.
“여기와서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어. 그냥 처음 플랑이 날 수 있단 걸 알고 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어. 나는 날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날 수 있던 게 아닐까.”
매우 참신한 발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레이무는 어딘가 납득하고 있었다. 도르가 날 수 있는 이유. 대충 끼워맞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편좋게 해석했다고 해도 레이무는 그것을 믿었다.
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걸어서 다가온 도르는 레이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도르는 레이무에게 제안했다.
“그러니까 나는 걸 같이 연습하자. 나랑 함께!”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보인 도르의 웃는 얼굴을 환한 일등성 같았고, 레이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향에서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마음의 힘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
이 발언이 많은 이들을 움직이는 계기가 될 만큼 중요한 것임을 도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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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 그녀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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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35화: 텐구 소녀의 우울과 풍축의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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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9. 텐구 소녀의 우울과 풍축의 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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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의 산. 환상향 중에서도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는 영지에는 환상향 최대의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의 일원 샤메이마루 아야는 산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가슴이 납덩이로 누른 것처럼 무겁다. 원인은 조금 전 자신이 도르에게 한 말이다. 알고 있다. 그녀를 원망할 게 아니라고. 자신의 힘으로 이겨야 복수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심한 말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를.
“…하하…”
쓴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손을 내민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를 팔방미인, 혹은 위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않았을 텐데.
“…결국 나도 마찬가지구나.”
모르는 것은 자신이다. 한때의 감정에 휩쓸려 친구를 잃었다. 사교적인 아야는 친구가 많다. 그 숫자를 생각하면 친구 한 명쯤은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엇일까, 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듯한 느낌은.
요괴의 산이라고 해도, 주거 공간은 그렇게 빽빽하지 않다. 샤메이마루 아야가 사는 마을도 그 중 하나이다. 산길을 빠져나와 마을로 들어갔을 때 아는 얼굴과 스쳐 지나갔다.
“아, 아야 씨!”
말을 걸어온 것은 요괴의 산에서도 특히 신경쓰던 후배 중 하나였다. 같은 카라스 텐구지만, 재능이 있어 이대로라면 자신 이상의 인재가 될 것이라 생각되는 소녀. 그 재능 때문에 심하게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따라주는 귀여운 후배다.
그런 후배는 아야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깨닫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까? 왠지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집에 가서 좀 쉬려고.”
가볍게 손을 흔들고 아야는 후배와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몸조리 잘 하라고 들어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야는 이미 지쳐있었다. 복수는 실패하고, 도르와 절연하고 모든 일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했다.
그 후배가 아야의 등을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익숙해진 감미처.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로 분주하지만, 지금은 한산하기만 했다. 가게 안에는 사람이 있지만 외부의 지붕 아래에는 한 명도 없다.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 일어난 일이 아니다. 유카의 사건이 끝난 지 일주일동안 그 자리가 찬 것은 앨리스와 마리사가 각각 찾아온 두 번 뿐이었다. 옛날에는 유카리와 유유코, 레이무, 아야가 즐겁게 얘기하던 그 자리는 이제 뻐꾸기가 우는 듯 했다.
이번 주에 도르는 앞서 말한 네 명을 만나지 못했다. 아야가 오지 않는 이유는 안다. 이제 자신과 그녀는 결별한 것이다. 여기에 아야가 올 리 없다. 슬픔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익숙해지지 않아 매일 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있지만.
그래도 유카리, 유유코, 레이무도 동시에 오지 않는 것이다. 유카리나 유유코는 바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레이무는 왜 오지 않는 거지?”
생각해보면 유카의 회담 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르로선, 신사와 유카의 건으로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자신은 어리광 부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레이무는 거의 매일 감미처에 왔으므로, 왔을 때 사과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성의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그토록 큰 싸움에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럽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부상이 아니란 것은 유카리에게 듣고 있지만.
「도르, 일이 끝나면 신사에 가보자.」
“그래. 제대로 사과해야지.”
주먹을 불끈 쥐고 도르는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의 상대를 한다. 도르가 안에 들어온 것으로 가게는 단박에 밝아졌다. 마스코트로서 도르는 이제 마을에서 엄청난 인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활기찬 실내와 달리 지붕 아래는 여전히 찬 공기만 흐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할머니에게 힘차게 인사하고 도르는 감미처를 빠져나왔다. 시간은 벌써 저녁을 지나, 밤에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지금은 붉게 마을을 물들이는 태양도 곧 산그늘에 가려질 것이다. 집에 돌아가기 전 하쿠레이 신사에 가려고 생각해 오른쪽으로 꺾는 순간, 도르는 누군가와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죄, 죄송합니다!”
생각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상대방이 더 컸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았지만, 부딪힌 것은 자신의 과실이므로 도르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갑자기 눈앞에 하얀 눈같은 손이 뻗쳤다.
“감사합니다.”
그 손을 잡고 일어난 도르는, 상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딪힌 상대는 레이무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다. 자세히 보면 옷도 그녀와 닮았지만, 레이무가 빨간색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눈앞의 소녀는 흰색과 파란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머리도 레이무와 달리 초록색 장발이 초목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을로 오는 여성들을 도르는 대부분 알고 있다. 가게 앞에 서있는 경우가 많아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꼭 인사를 하고, 서당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와는 면식이 없었다. 그 소녀도 의아한 듯 도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
“…아, 네!”
생각에 빠진 도르는 소녀의 부름에 대답하는 것이 늦었다. 그것을 신경쓰지 않고 소녀는 대화를 계속한다. 여전히 의아스러운 표정이, 자신의 등을 향하고 있단 것을 도르는 문득 깨달았다.
“요괴죠? 흡혈귀?”
“에? 아? 네, 그렇죠?”
사실이므로 크게 신경쓰지 않고 도르는 대답했다. 지금은 마을 대부분이 도르가 흡혈귀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그렇지 않았다. 눈앞의 소녀의 눈이 확 가늘어지더니 갑자기 뭔가를 꺼낸 것이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레이무가 갖고 있던 불제봉과 비슷했다.
“혹시나 했는데… 퇴치합니다!”
“네?”
순간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런 강풍에 또다시 중심을 잃은 도르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모른 채, 도르는 패닉에 빠져 있었다.
“네? 무, 무슨…”
당황한 도르를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불제봉 같은 것을 옷자락에 집어넣었다. 쭈그리고 앉아 도르를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당신, 요괴죠?”
“일단은…”
“정말요? 전혀 요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코스프레가 아니라?”
소녀의 코스프레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도르. 오래 환상향에 있었지만,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책에서도 본 적 없다. 전문용어일까.
“어쨌든 요괴라면 퇴치하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도르는 한 시간정도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단은 눈앞의 소녀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저, 요괴라고 전부 나쁜 건 아니라구요?”
물론 사람을 덮치는 요괴도 있지만,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케이네처럼 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요괴나, 모코우 씨처럼 길안내를 하는 요괴도 있다.
어라, 모코우 씨는 요괴인가? 느닷없이 도르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케이네가 반요란 것은 알지만, 모코우가 요괴란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뭐, 불꽃을 낼 수 있으니까 요괴려나, 라고 멋대로 결론지었다.
“그런! 요괴는 전부 퇴치해야 되는게 아닌가요?”
눈을 부릅뜨고 경악하는 소녀를 보며 도르는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몰래 생각했다. 대단히 실례다.
“네. 여기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요괴도 있어요. 저는 저기 감미처에서 일하고 있는 요괴에요. 요력은 전혀 없지만.”
머릿속에서 플랑이 투덜거리며 침울한 소리를 냈다. 일부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요력이 없거나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플랑의 콤플렉스가 되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당신도 나쁜 요괴로 보이지는 않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환상향에 온지 얼마 안되었거든요… 아, 저는 코치야 사나에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과연, 최근에 환상향에 왔다면 모를 것이다. 사과하는 사나에게 도르도 곧 고개를 숙였다.
“저는 도르 스칼렛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도르 씨군요. 저는 내일도 여기 올 예정인데, 보면 말을 걸어도 될까요?”
“네. 내일도 저 감미처에 있을 예정이니 꼭 와주세요.”
남몰래 내일의 고객을 한 명 늘린 도르는 그대로 웃으며 사나에와 헤어지고 날아올랐다. 이제 석양도 산그늘에 지고 주변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늦으면 스이카가 걱정할 것이다. 레이무의 모습만 보고 바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한 도르는 신사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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