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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34화: 전후 처리와 깊어지는 의혹
동방화영총
난이도 Extra
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8. 전후 처리와 깊어지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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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는 것은 두 번째. 첫 번째에는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깜깜한 통로였다. 오른쪽도 왼쪽도 위쪽도 돌로 둘러싸인 무기질적인 통로. 천장은 도르가 서 있으면 겨우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 뒤돌아보면 막다른 골목이였다. 그렇다고 앞으로 갈 수도 없었다. 어떻게 배치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딱 맞는 큰 새장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뒤를 향한 채 앉아있는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는 붉은 색을 기조로 한 프릴이 달린 옷, 반짝이는 금발에 보석이 달린 날개. 그것은 거울로 자주 보는 자신의, 아니 플랑의 모습 그대로였다.
“플랑? 플랑이야?”
자신의 안에 있는 플랑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걸지만 새장 속의 소녀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 웅크리고 있다. 그 모습은 더는 볼 수 없어 도르는 새장에 손을 대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그것을 흔들려 했다.
“누구야? 왜 여기 있어? 너는… 플랑이 아냐?”
자신 안의 플랑이 아니라면 그녀는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르는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샤랑샤랑, 새장 속 소녀의 날개소리가 울렸다.
“하늘은… 사라지지 않는거야?”
소녀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언제나 듣고있는 플랑과 똑같은 목소리. 그와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되었다. 뭔가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이였을까. 꿈 치고는 굉장히 현실 같았던…
「도르! 도르! 괜찮아?!」
꿈속과 같은 소리가 도르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꿈속의 목소리와 똑같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 목소리는 오히려 슬픔에 차 있던 것 같은… 설마.
거기까지 생각하고 도르는 그 새장 속 소녀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 설마… 아니, 그럴 리 없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내몰자 오른손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침대 옆에서 손을 잡은 채 카자미 유카가 잠들어 있었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사투를 벌였던 카자미 유카가.
“어…? 꺄아아아아아?!?!”
무심코 도르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왜 유카가 여기 있는지, 왜 손을 잡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패닉에 빠진 도르에게 플랑이 설명하기 전에 유카가 눈을 떴다.
“왜이리 시끄러워?”
졸린 듯 눈을 비비고 몽롱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하쿠레이 신사에서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유카는 두세번 눈을 비빈 뒤 도르를 확인하자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일어났구나. 다행이야.”
그것은 도르가 처음으로 본 유카의 순수하고 상냥한 미소였다. 지금까지의 비웃음이나 광기의 미소와는 다른 그 아름다움에 도르는 넋을 잃고 말았다. 예쁘다,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죽어버리면 내가 죽일 수 없게 되잖아.”
“어…”
마치 외출하자는 말처럼 편하게 하는 말에 도르는 굳어버렸다. 식은땀이 흐른다. 그런 도르의 상황을 조금도 모르고 유카는 상냥하게 이야기한다.
“일어날 수 있어? 거실로 와줬으면 좋겠는데.”
아, 이것은 죽이기 전에 보여주는 유카 나름의 상냥함일 것이다. 도르가 현실도피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짧은 인생이였구나, 하고 회상한다. 정말 짧은 인생이었다.
머릿속에서 박장대소하는 플랑의 말을 들으며, 도르는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 가능하면 아프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다, 라는 초점이 어긋난 생각을 하며 손을 당겨졌다. 그대로 이끌려 거실로 끌려갔다. 늘 둘만 쓰기엔 너무 넓은 거실의 모습은 오늘은 조금 달랐다.
4인용 테이블. 도르 기준 왼쪽의 가장 안쪽 자리에는 명계의 주인, 사이교우지 유유코가 언제나처럼의 미소를 띄며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도르를 발견하곤 작게 손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그 뒤에는 강직한 정원사, 콘파쿠 요우무가 진지한 눈빛으로 도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꾸벅 머리를 숙인 뒤 정면을 바라봤다. 그 모습은 진지한 요우무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그 둘의 오른쪽 옆에는 이 세상의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절세미녀가 앉아 있었다. 복장은 일본식인데 마시는 것은 컵에 담긴 커피라고 하는, 왠지 화양 절충의 상태였지만.
죽림의 안쪽에 있는 영원정의 주인, 호라이산 카구야. 그녀는 친구 도르의 모습을 보자, 실례할게, 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 뒤에는 야고코로 에이린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카구야의 앞에는 이 집의 주인이기도 한 이부키 스이카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양손을 머리 뒤로 한 채 의자에 앉아 놀고 있었다. 그 뒤에는 유유코, 카구야와는 다르게 아무도 없다. 그녀는 마치 온 것이 도르임을 아는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옆 유유코의 앞자리는 공석이였다. 당연히 그 뒤에도 아무도 없다. 평소같으면 그럴 테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도르가 볼 때 가장 뒤쪽에 의자가 하나 추가됐고 거기에 압도적인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구나, 도르.”
다리를 꼬고 펼친 부채를 접은 요괴의 대현자, 야쿠모 유카리는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본 적 없는 예쁜 여성이 서 있고, 유카리의 지시를 받고 도르에게 접근에 웅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도르 씨. 저는 야쿠모 란. 유카리 님의 식신입니다.”
“…여동생?”
도르는 식신이 무엇인지 몰랐다. 일단 야쿠모라는 성씨가 같아서 여동생이나 비슷한 걸까 생각했지만 란은 굳어버렸다. 뒤에선 유카리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
“그래, 란은 여동생 비슷한 거야.”
“농담하지 마세요 유카리 님… 음, 일단 안내해 드리죠.”
란에게 손을 잡혀 도르는 걷기 시작했다. 도중에 뒤돌아봤지만 유카는 여기에 오는 기색은 없었다. 그대로 탁자의 빈 자리로 안내되었다. 의자를 당겨 앉자 란은 유카리 뒤의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동시에, 지금까지 벽에 기대어 있던 한 카라스 텐구가 움직여 도르 뒤에 섰다.
“아야! 다친 데는 괜찮아?”
“네, 도르가 치료해 준 덕분에 멀쩡해요.”
“그렇구나…”
부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때 도르는 눈치채지 못했다. 한순간 아야의 표정이 슬픈 빛을 띈 것을.
“이제 모두 모였네.”
그렇게 말하곤 유카리는 시선을 창가로 향했다. 뒤돌아보면 의자가 두 개 놓여있고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키리사메 마리사가 앉아 있었다. 마리사는 가볍게 도르에게 손을 흔들었고 앨리스는 인형을 도르에게 날렸다. 작고 사랑스러운 앨리스의 인형은 그대로 날아가 도르의 무릎 위에 앉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기분 좋은 듯 웃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같은 인형이었다. 매우 사랑스러운 외형과 정반대로, 지금 도르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면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그것을 방어하는 프로그램이 짜여있는 것을, 도르는 모른다.
앨리스 뿐만이 아니다. 유유코는 소매에 숨긴 손바닥에 나비를 전개하고 있고, 카구야도 언제든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요우무는 칼을 강하게 쥐고 에이린, 스이카를 경계하고 있다.
그 유카리조차 도르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다수의 스키마를 전개하고 있다. 도르에겐 언제나의 집이지만, 모여있는 인요들에겐 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이번 전후 처리를 시작할까요. 사실 하쿠레이 레이무, 이자요이 사쿠야 두 명도 부르고 싶었지만, 사쿠야는 불참, 레이무는 참가할 수 없는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불참.”
그 말에 지금까지 인형과 놀고있던 도르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레이무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하는 표정을 보고 유유코가 보충을 덧붙인다.
“다친 건 아냐. 패배해서 조금 토라진 것 뿐이야.”
그 말에 안심하고 다시 도르는 인형과 놀기 시작했다. 볼을 비비는 걸로 마음에 든 것 같다. 앨리스도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있다.
“그러면, 이번에 카자미 유카로 인해 도르 스칼렛, 샤메이마루 아야, 하쿠레이 레이무, 이자요이 사쿠야 넷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도르 외 세 명은 중상이라고 볼 정도. 이만큼 멋대로 움직여선 저도 곤란합니다. 그 때문에 여기 환상향의 대표자들과 사건 관련자들의 의견에 따라 처우를 결정하겠습니다.”
정확히는 도르가 알고 있는 환상향의 대표자 들이지만, 유카리는 결코 말았다. 도르의 존재를 감추는 것은 유카리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도가 높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카리의 말을 듣고 모두가 생각하는 가운데 아야가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도르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아야는 유카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을 천천히 잡자 아야는 도르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어색했다.
“찬성이야. 너무 위험해.”
카구야도 곧 아야에게 동의했다. 에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인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 환상향에서 카자미 유카의 행동이 허용되지 않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강한 요괴가 싸움을 갈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뜻밖에 앨리스는 동참하지 않았다. 아야의 시선이 거세진다. 하지만, 이라고 앨리스는 덧붙였다.
“도르를 노린 건 실수였어. 이 아이가 힘이 없다는 건 누구라고 알 거야.”
“그래. 도르를 노린 건 실수였지. 하지만 다른 셋은 달라. 그 부분도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야?”
“스이카 님!”
아야가 소리쳤다. 그것을 귀찮은 듯이 스이카는 받아넘겼다.
“아야가 말하고 싶은 것도 알겠고 기분도 알겠어. 하지만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는 건 잘못이야.”
스이카의 정론에 아야는 대꾸할 수도 없었다. 아야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게다가, 스이카는 덧붙였다. 아야를 째려보며.
“원래 도르가 우리와 관계 있단 것을 말하지 않았으면 이만큼 피해가 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잖아?”
“그건… 죄송합니다.”
그때 아야의 한 마디가 유카에게 불을 지핀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도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줄었을까?
“뭐 그래도 도르는 습격 당했을테니 그건 감사해야겠네. 고마워, 도르를 지켜줘서.”
“그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머리를 깊이 숙이는 아야는 진심으로 귀찮은 듯 보며 스이카는 얘기가 끝나자 다시 의자에서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카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요괴의 특성이라고 해도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중상을 입히고 하쿠레이 신사를 무너뜨린 것은 사실. 저도 제거하는 쪽에 한 표네요.”
유카리의 말에 회의의 결론은 정해진 듯 했다. 하지만,
“어머? 말 잘했네 유카리.”
유카의 제거에 한 표를 던진 유카리를 지금까지 관망하던 유유코가 비난했다. 예상 밖의 말에 유카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유카리?”
“아니? 단지 이번엔 네가 말하는 게 실수라고 느꼈을 뿐이야.”
“…”
“어머, 갑자기 침묵하는 거야? 하쿠레이의 무녀가 지는 걸 너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 상태의 무녀였다면 그곳의 요괴는 무찌를 수 없어. 그러면 하쿠레이 신사의 건은 인용하기 부적절하지 않을까?”
유카리, 유유코 사이에서 불꽃이 튄다. 갑작스런 사태에 도르는 허둥지둥 했지만 곧 유카리가 의견을 굽혔다.
“…그렇죠. 하쿠레이 신사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그거 좋네. 게다가 그 뿐 만이 아니야. 여기 모인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
“잠깐, 유유코, 기다려.”
유카리는 총명했다. 그래서 유유코가 말하려는 것을 알았다. 이어지는 말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번 건은 카자미 유카를 퇴치한 도르 스칼렛에게 맡기는 것이 맞지 않아?”
“유유코… 너…”
유카리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이 단계에서 회담의 결과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모두가 도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천천히 유유코가 말했다.
“도르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유카가 죽었으면 좋겠어? 살았으면 좋겠어?”
유카리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다. 머릿속으로 비겁하다고 유유코를 욕했다. 그런 질문을 하면 도르가 어떻게 대답할지 불 보듯 뻔하다.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렷한 눈으로, 도르는 대답한다. 소녀는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정은 다양한 요괴들을 적으로 돌린다. 예를 들면, 뒤에 서 있는 카라스 텐구같은 소중한 친구조차도.
그래도 도르는 양보하지 않는다. 이 의견만은 양보할 수 없다. 이 순간 카자미 유카의 처우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요괴도 있다.
“아까부터 가만히 있었는데, 정말 멋대로들 말하네.”
그리고 그것은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카는 이를 들어냈다.
“여기 있는 요괴만으로 나를 멈춘다고?”
유카에게서 방출된 압도적인 양의 요력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인요들의 경계가 강해진다. 도르의 무릎에 앉은 사랑스러운 인형조차도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갑작스레 웃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큰 웃음이 아닌 속삭이는 듯한 킥킥거리는 웃음이.
“뭐가 웃겨?”
“아니, 그치만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웃음의 주인, 유유코는 가만히 유카를 바라본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 투명한 눈동자로.
“카자미 유카, 그대의 목적은 도르 스칼렛을 이기는 것. 그렇지? 무조건 그럴 거야. 그대는 전력으로 거기 도르와 싸워서 패배했으니까. 그런 당신이… 아니, 지금까지 패배한 적 없는 당신이 도르에게 관심이 없을 리가 없어. 그렇지?”
유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무표정하게 유유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카리는 카자미 유카를 도르의 주변에 두는 것으로 억제할 수 있다. 카자미 유카는 도르 옆에서 언제든지 싸울 수 있다. 이게 최선의 방법은 아닐까?”
“유유코… 너…”
작게 중얼거린 친구의 말을 유유코는 무시했다. 이제 이 회담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사이교우지 유유코 단 한 명 뿐이었다.
“도르, 당신은 유카가 소중한 사람을 덮치려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
갑작스런 질문에 도르는 순간 당황했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 건 용서 못해.”
“그래, 문제없네.”
진심으로 즐거운 듯이 유유코는 손뼉을 쳤다.
“그렇다면 이제 회담은 끝. 카자미 유카의 처우는 도르의 옆에 있게 하는 것. 반대 의견 있을까?”
“위험해요. 지금 당장 죽여야해요.”
끝을 내려던 유유코의 말을 곧바로 자르고 아야는 반대했다. 지체하지 않고 발론했다.
“마지막에는 이겼지만 앞으로도 이길지 알 수 없어요. 그런 상대에요 카자미 유카는. 그런 괴물을 도르 옆에 둔다니-”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그 반론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스이카가 아야의 의견에 반박한다. 그녀의 단 하나의 신념을 바탕으로, 말을 계속한다.
“몇 번이고 해도 카자미 유카는 도르에게 이길 수 없어. 그리고 도르 옆에는 내가 있어. 어설픈 짓은 못하게 할거야.”
“하지만-”
그래도 아야는 물러서지 않는다. 옛 상사인 스이카를 상대로도 필사적으로 반박한다. 그러나 스이카는 아야의 말에 더 이상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 요괴도 마찬가지이다.
“유카리, 뭐 다른 의견 있어? 그대의 ‘은인’인 도르 스칼렛과 도르의 절친 이부키 스이카가 카자미 유카를 감시한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유유코에게 이미 이 이야기는 끝이다. 아무리 아야가 반박하려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 그렇네.”
마치 자기자신을 타이르듯 하는 말에 카구야가 일어섰다. 절망스런 표정으로, 아야는 카구야를 응시했다.
“애기는 끝이야. 도르, 나는 조금 화났어. 왜 그때 식신으로 불러주지 않은거야? 그러면 시간을 멈춰서라도 도우러 갔을텐데…”
“아… 미안해 카구야. 깜빡 잊었어.”
주머니에서 인간형의 식신을 꺼낸다. 그 모습에 어이 없어하면서도 카구야는 도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뜨는 도르를 보고 웃으면서, 카구야는 말했다.
“다음에는 꼭 불러줘. 당신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 지 알아?”
“응, 미안해 카구야.”
“괜찮아. 나중에 감미처에서 상대해주면 봐줄게. 다음에 또 봐.”
“응! 조심히 가!”
그때까지 도르와 카구야의 대화를, 에이린은 무표정으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손을 흔들고 집을 나가는 카구야와 에이린. 문이 닫히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아야였다.
“도르, 제발, 다시 생각해봐.”
“아야…”
진심으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야는 도르에게 호소한다. 유유코보다 좋은 의견을 낼 수 없는 지금, 상황을 뒤집으려면 도르에게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카구야는 사라졌지만, 도르의 결정이라면 그녀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아야, 이제 포기해.”
“하지만… 하지만…”
마리사가 제지하지만 아야의 마음은 이미 망가져간다. 이 자리에서 아야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도르의 집에 환상향의 유력자가 모인다고 들었을 때, 아야는 기대했다. 그리고 모인 멤버를 흘끗 보고 아야는 확신했다. 복수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기뻤다.
누구나 도르를 소중히 생각한다. 그런 도르에게 상처를 준 카자미 유카를 용서할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야는 그 도르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
도르의 한 마디로 상황이 달라졌다. 아니, 그 이전 유유코의 발언에서 결론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쐐기를 박은 것은 확실히 도르의 말이었다.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 한 마디로 중립이었던 스이카와 카구야와, 심지어는 반대했던 앨리스조차도 입장을 바꿨다. 아야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그렇다면 복수를 이루기 위해선…
“부탁이야 도르, 나는 양친을 그녀에게 살해당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고!”
“야 아야!”
마리사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아야는 도르에게 달려들었다. 도르의 양 어깨를 붙잡고 호소한다.
“나를… 나를 위해 죽이…”
“적당히 해!”
찰나, 아야는 나가떨어져 벽에 들이받았다. 당황한 마리사가 아야를 확인한다. 아야가 올려봤을 땐 분노의 표정을 짓고 있는 스이카와 조금 겁 먹은 모습의 도르였다.
“샤메이마루 아야.”
타이르듯 무게 있는 말에 아야는 반사적으로 그 쪽을 보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사이교우지 유유코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그대의 마음도 조금 이해합니다. 그래도 너무 과했네요.”
도르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말을 한 것이다. 스이카도 화를 내고, 유유코도 적잖히 과민반응하고 있다.
고개를 숙여 도르를 보지 않고, 아야는 중얼거린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답해줘 도르.”
마지막으로 매달리듯 아야는 도르를 본다. 겁 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아야도 볼 수 있었다.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어?”
그 말에 도르는 울상이 되었다. 그래도 아야는 대답을 기다렸다. 신에게 기도하는 심정으로 도르를 응시했다.
이윽고 도르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래… 라고 중얼거리고 아야는 천천히 일어섰다.
“최악이야.”
내뱉은 그 말에 도르는 멍하니 아야를 봤다. 아야는 지금까지 도르에게 지은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카를 만났을 때와 같이 원망하는 표정으로 도르를 보고 있었다.
“위선자년… 절대 용서 안한다.”
도르의 큰 눈동자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순간적으로 아야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곧 방을 뛰쳐나갔다. 그녀를 부르는 마리사와 앨리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하늘로 날아갔다. 방안에는 도르가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고 있었다. 위로하려는 스이카의 손을 뿌리쳤다. 놀라는 스이카에게 도르는 웃어보였다.
“어쩔 수 없어… 어쩔수 없어. 아야에게 원망받아도 어쩔 수 없는 짓을 내가 했으니까.”
아야의 기분은 괴로울 만큼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도르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유카를 죽이자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복수를 하면 아야는 텅 빈 존재가 되버린다. 나중에 그런 변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르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의견과 아야의 의견이 충돌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뿐이다. 그 뿐인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미안해… 미안해요…”
도르가 할 수 있는 것은 떠나간 아야에게 사과하는 것 뿐이었다. 환상향에 와서 처음으로 도르는 혼자 울었다.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울었다.
“무슨 속셈이야, 유유코.”
울고있는 도르는 스이카에게 맡기고, 유유코, 유카리, 앨리스, 마리사는 차례로 집을 떠났다. 앨리스, 마리사와는 중간에 헤어져 현재 유카리는 유유코와 명계로 향하는 중이다. 스키마를 사용하면 곧바로 갈 수 있지만, 유카리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유유코도 그것을 아는 듯 하여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뒤에서는 요우무가 조용히 따라오고 있다. 왜 유카리가 유유코와 같이 행동하는지 그녀는 잘 알 것이다.
명계를 천천히 거닐면서, 유카리는 그 집에서 들을 수 없었던 걸 유유코에게 듣기로 했다. 유유코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유카리는 알고 싶었다.
당초 유카리는 카자미 유카를 제거할 생각으로 회담에 참여했다. 도르의 일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그러한 능력과 성격은 환상향에 해만 될 뿐이다. 친구인 유유코도 그렇다 생각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유유코는 교묘한 말로 그 자리의 모두를 유도하여 유카의 처분을 도르가 감시하는 지극히 가벼운 것으로 바꾸었다. 그것이 유카리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유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카리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모르는구나… 아무래도 나는 야쿠모 유카리라는 요괴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나 보네.”
그것은 이쪽이 할 대사라고 유카리는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유카리가 알고 있는 생전의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밝은 성격이었지만, 이런 의미심장한 말은 하지 않았다. 되살아나고 죽음에 관한 강력한 힘을 가져도 대요괴로서 도움이 되 줄 거라고 믿었다.
“유카리, 이번에 카자미 유카는 도움을 받았어. 원래라면 그녀는 거기서 죽었을 거야. 그런데 왜 살았을까?”
“그야 네가…”
“아니라고?”
유카리의 대답을 유유코는 즉시 부인했다. 유카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유유코는 말을 계속한다.
“확실히 나는 카자미 유카가 살도록 이야기를 유도했다. 하지만 유도만 했을 뿐이야. 유카리, 여기까지 얘기해도 아직 모르겠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눈을 크게 떴다. 뒤엉킨 사고가 순식간에 깔끔해진다. 알 것 같다. 확실히 유유코는 카자미 유카가 살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도만 했을 뿐이다.
“그 회담의 결론을 낸 건 내가 아냐. 그 카라스 텐구가 가장 잘 알거야. 그리고,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제 알겠지?”
유유코는 멈춰서서 가만히 유카리를 바라봤다. 그 연분홍색의 입술로 대답했다.
“도르의 한 마디로 카자미 유카는 살아난거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휙 그 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한다. 행동은 천진난만한 소녀지만,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그 후에 이어질 말을 유카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 한마디로 이부키 스이카도, 호라이산 카구야도,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도 의견을 바꿨어. 아니, 정확히는 결정했다고 하는 편이 옳겠네. 그리고 야쿠모 유카리, 본래라면 중립이여야 할 너조차도.”
“아니, 나는…”
“지금까지 전혀 깨닫지 못한 게 증거야. 유카리, 아무리 그래도 그 아이를 너무 아끼는 건 아닐까.”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유카리를 덮쳤다.
“그 아이의 한 마디만으로 그만큼의 전력이 움직이는 거야. 그것이야말로 환상향을 멸망시킬 수도 있어. 잘 알고 있지? 물론 그 아이는 싸움은 원하지 않아. 평화로운 세계를 희망하고 있지. 하지만 그것이 언제 바뀔지 몰라.”
유유코의 말에, 유카리는 분명히 부정했다.
“아니, 도르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
“그래. 도르는 그런 일 안하겠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난 믿어. 하지만 그 주변은 달라. 아직도 모르겠어? 저 무력한 흡혈귀 하나를 길들이는 것 만으로 환상향의 절반을 손에 넣는 거라고?”
이부키 스이카와 호라이산 카구야.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전력이다. 도르 개인의 힘은 없지만 그 둘의 힘을 얻는 것 만으로도 도르의 가치는 치솟는다. 도르를 공포로 굴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걸 스이카가 용인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악의에 너무 약하다. 거짓말을 믿을 만큼 순수하고 지나치게 친절하다. 그녀를 구슬리는 방법은 수 없이 많다.
“게다가, 유카리,”
머릿속에서 현재 도르의 상황을 정리하는 유카리에게 유유코는 말했다.
“솔직히 나는 도르를 완전히 믿지 않아. 그 아이는 자신의 몸 속에 몸의 원래 주인인 플랑도르 스칼렛이 있고, 그녀를 풀어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했지. 나는 그게 사실인지 의심스러워.”
“…도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거야?”
유유코는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그 아이가 그런 일을 할 것 같진 않아. 게다가 그런 거짓말을 해도 그 아이에게 이득이 없어. 하지만 증거가 없어. 아니, 증명할 방법이 없어. 너도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요괴가 또 있을까? 도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상한 점이 많아. 심지어 이미 그 아이가 속아서 자신의 안에 플랑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누군가 도르를 조종하고 있다고?”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누가, 무엇을 위해.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손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야. 어쩌면 그 아이의 마음이 망가져서 자기 안에 플랑이 있다고 현실을 도피하는 것일지도 몰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잖아. 물론 도르의 말이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카리의 말대로다. 지금까지 유유코의 말의 근거는 너무 적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말한 것 뿐이다. 하지만 유유코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난 오래전부터 궁금했어. 왜 그 아이는 플랑에게 몸을 돌려주기 위해 애쓸까? 왜 그렇게 열심인 걸까. 그 일면만 보면 그녀의 상냥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 도르는 착하고 좋은 아이니까. 그렇지만, 문제는 그게 아냐. 만약 플랑에게 몸을 돌려주면 도르는 어디로 가는거지?”
“그건…”
유카리도 그것을 생각했다. 도르가 목적을 달성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 도르의 원래 육체는, 그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할을 다 한 날에는…
“사라지겠지.”
유카리가 말하지 못한 말을 유유코는 시원스레 말했다.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어딘가 근심을 띄고 있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치만 그 아이의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은 적 있어?”
유유코의 말에 유카리는 깜짝 놀랐다. 이미 도르가 플랑의 일에 관해 알아본 지 상당히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플랑에게 몸을 되돌려주면 자신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도.
“마을에서는 감미처을 통해 여러 인요들과 접촉하고, 집에 가면 스이카라는 따뜻한 가족도 있어. 이변의 해결에 공헌한 덕에 나나 유카리, 영원정의 멤버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지. 지금까지 못해본 일을 그녀는 다 할 수 있어.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세계, 도르 스칼렛에게 있어 최고의 세계. 그 아이는 최고의 행복을 맛보고 있겠지… 그런데 플랑에게 몸을 돌려주고 사라진다고?”
그 질문에 유카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도르가 행복해 보이는 것은 유카리의 눈에도 분명하다. 그런데 그녀는 필사적이다. 플랑을 되돌리기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원래 플랑에게 몸을 돌려준다는 목적 자체가 이상해. 지금 그 아이에게 그 목적만 이상한거야. 마치 도르라는 존재에 억지로 끼어들어간 목적같아.”
확실히 이상하다. 지금의 도르가 사라질 지도 모르는 목적. 삶을 원하는 소녀에게 있어 죽음을 이끄는 목적. 게다가 도르는 그 죽음을 생각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이 거짓이라면 당연히 그 아이 안에 있다는 플랑도 거짓말. 즉, 그 목적이 없다면 도르 스칼렛의 위화감은 사라져.”
오랫동안 누구도 도르 속 플랑의 존재는 지각하지 못했다. 전부 도르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에 믿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원래 그런 존재가 없다.
유카리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유유코와 카구야도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도르같은 요괴는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라면 설명이 된다.
유카리 속의 도르의 이미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목적이 거짓말인게, 진짜 그녀의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 아이의 마음이 망가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를 너무 믿는 건 그 누군가의 의도에 빠지는 거야. 눈을 떠, 유카리.”
도르의 속에 플랑은 없다. 누군가 도르에게 암시를 걸어 그렇게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간파할 수 없는 것일까. 다시 유카리는 생각에 빠진다.
유유코가 말한 것이 맞는지 유카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을 판단하기엔 정보가 너무 적었다.
“그것에 관해서는 몰라. 유유코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도르의 말이 전부 사실일수도 있어. 지금은 모르겠어. 생각해볼게. 하지만 그러면 너는 왜 유카를 도왔지? 도르의 영향력을 보이는 게 목적이라면, 리스크가 너무 커. 만약 유카가 도르와 다시 싸우면 도르는 이길 수 없을지도 몰라.”
서둘러 유유코를 쫓으며 유카리는 뒤에서 말을 던졌다. 유카리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도르의 지금까지의 발언과 유유코의 고찰 모두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유유코의 목적은 방금 알 수 있었다. 유카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도르를 경고하는 것. 하지만 그대로 유카를 제거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이부키 스이카도 그랬지? 몇 번을 해도 도르의 승리라고.”
“그건 스이카가 도르를 믿으니까. 회피하지 마 유유코.”
유유코의 말을 유카리는 곧 비난한다. 스이카는 도르를 믿는다. 가족으로서 그녀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유코는 다르다. 그것을 유카리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고개만 뒤로 돌려 유유코는 유카리에게 미소지었다. 깨끗한 미소는 생전의 것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래, 다음엔 질 지도 몰라.”
“그러면 그건 곧 환상향의-”
“저기 유카리, 아까의 대답이야.”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며 유유코는 유카리의 말을 막았다. 유유코는 춤추듯 이상한 음색으로 유카리에게 대답했다.
“나는 카자미 유카의 위험과 너에게 도르의 영향력을 경고하는 것, 그 두 가지를 저울에 놓고 더 큰 쪽을 택했을 뿐이야. 작은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는 건 대요괴 실격이야.”
유카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유유코는 확실히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그녀는 걷는 속도를 조금 높여 명계의 어둠에 녹아들었다. 그 등을 유카리는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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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도르에게 말거는 플랑의 말과 다른 캐릭터의 속마음 모두 ‘’로 표시했지만 앞으로 도르 머리에만 들리는 플랑의 말은 「」로 표시하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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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33화: 그리고 그녀의 세계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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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7. 그리고 그녀의 세계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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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상황에 가장 당황한 것은 유카였다. 확실히 유카의 세계에서 도르 스칼렛은 사라졌다. 확실히 유카의 세계에서 도르 스칼렛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카가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지, 죽었다고 시체가 사라지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유카의 눈앞에는 상처입은 카라스 텐구밖에 없다. 그리고 우산을 휘둘렀을 때 느낌이 없었다. 마치 허공을 가른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하고 유카는 겨우 깨달았다. 피했다. 그것도 도르 자신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즉시 유카는 주위를 둘러본다. 뜻밖에도 흡혈귀 소녀는 바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 위를 지키듯 서있는 은발의 메이드 복장의 소녀는 유카에게는 처음 보는 존재였다. 언제 이곳에 왔는지, 어떻게 도르를 저기까지 이동시켰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새로운 개입자에게 유카의 흥미는 옮겨갔다.
영문을 모르겠다. 도르의 머리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 때, 확실히 죽을 것이라 생각했고 사는 것을 포기했다. 가차 없이 내리쳐진 우산을 막는 행위를, 도르는 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포기했다. 머릿속으로 플랑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기다려도 충격은 오지 않았다. 느낀 것은, 허리에 약간의 충격과 따듯한, 아니 뜨거운 것.
천천히 눈을 뜬다. 눈에 들어온 것은 카자미 유카도, 해바라기도 아닌 흐린 하늘이었다. 그리고 도르는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 도르는 바닥에 누워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지키듯 덮어주고 있다. 그게 누구인지, 시선을 돌렸을 때 은색의 머리가 눈에 보여 도르는 놀랐다.
자신을 덮어준 것은 홍마관에서 자고 있어야 할 이자요이 사쿠야였다. 사쿠야의 능력은 플랑에게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 그 능력으로 자신을 도와준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정상이 아닌 것은 그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표정과 전해져 오는 체온으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쿠야 씨… 왜…”
“…아가씨의 명령입니다. 당신이 죽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그것이 제 역할입니다. 자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오늘의 일이 머릿속에서 플래시백 된다. 항상 요괴가 없는 산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났던 세 체의 요괴. 왜 지금까지는 요괴에게 습격당하지 않았는가. 왜 오늘은 요괴를 마주쳤는가. 퍼즐이 맞춰진다.
사쿠야 덕분이었다. 사쿠야가 뒤에서 도르를 지켜주고 있던 것이다. 접근하는 요괴들을 물리치고 항상 뒤에서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도망치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그, 그치만…”
괜찮을 리가 없다. 그 말을 사쿠야의 손가락이 멈췄다.
“당신은 바보입니다. 태양의 밭이 얼마나 위험한 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텐데. 하지만… 감사합니다. 도르, 저를 위해서… 약초를 가져오려고 해 주셔서 기뻤어요.”
그것이 도르가 처음으로 본 사쿠야의 미소였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사쿠야는 도르 위에 쓰러졌다. 체력의 한계였을 것이다. 의식을 잃고 어깨가 심하게 상하로 요동치고 있다. 그 몸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려, 도르는 사쿠야의 아래에서 빠져나왔다.
“잘 모르겠지만 방해만 된 것 같네.”
무리에요, 사쿠야 씨.
도르는 마음속으로 사쿠야에게 사과했다. 둘러보면 레이무는 신사의 잔해 위로 내던져져 있고 아야는 유카의 발밑에 쓰러져 있고, 사쿠야는 자신의 발밑에 쓰러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무력해서 이 상황을 초래했는데, 자신만 도망칠 수는 없다.
자신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아야가 다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했다면 레이무는 지금 쯤 치료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사쿠야가 일부로 아픈 몸을 채찍질하며 돕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이 셋을 죽이는 것과 같다. 자신에 차서 유카를 이기는 생각을 했던 과거의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지금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방패의 힘은 유카에겐 통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이제 셋과 함께 죽는 것을 기다리는 것 뿐.
플랑의 외침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도르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레밀리아에게 사과한다.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전 세계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어리석은 존재.
안녕.
플랑에게, 환상향에게, 도르는 작별을 고했다.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이나 포기하는거야?”
울러펴지는 목소리에 도르는 천천히 눈을 떠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그리고 곧 발견했다. 무너진 신사. 그 중 유일하게 온전한 붉은 토리이 위에 앉아 그녀는 이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도르는… 그렇게 약한 아이가 아닐 텐데.”
도르의 유일한 가족, 이부키 스이카가 거기에 있었다. 스이카는 가만히 도르는 응시하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행위가 도르에게 용기를 주었다.
“더 이상 포기하지 마. 지금까지 전부 포기했잖아. 도르는 조금 더 멋대로 살아도 괜찮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돼. 도르가 하고 싶은 걸 해.”
지금 자신이 하고싶은 것. 그것은 카자미 유카를 쓰러트린다거나 이 이변을 해결한다거나 하는 큰 일이 아니다. 도르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하나. 하쿠레이 레이무, 샤메이마루 아야, 이자요이 사쿠야. 이 셋을 지키고 싶다. 그뿐이다. 단지 그 뿐인 작은 소원을, 도르는 포기하려고 했다.
이전 세계에서 도르는 포기했다.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이번 세계에서는? 이 세계에서도 포기할 것인가?
단 세 존재를 지키고 싶은 그 작은 소망마저 포기할 것인가.
포기할 리가 없다.
“또 방해야? 이렇게 많아도 질리는걸.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해주는 건가?”
그 말에 토리이 위의 스이카는 시선을 유카에게로 살짝 돌렸다. 그 눈에는 기가 막힌 감정이 보였다.
“너구나? 내 도르를 귀여워해 준 녀석이. 하지만… 미안하지만 널 쓰러트리는 건 내가 아니다. 거기 있는, 도르 스칼렛이다.”
스이카의 말을 듣고 유카는 코웃음친다.
“이 상황이 보이지 않는 걸까? 거기 작은 흡혈귀 씨는 이미 포기했어. 싸울 수 없어. 아니, 싸워도 이길 수 없다. 이미 이렇게 판단한거야.”
“성급하긴, 잔챙이 녀석.”
도발에 유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건 니가 도르 주변의 인간, 요괴들을 모두 쓰러트렸으니까 하는 말 뿐이잖아? 넌 하나도 이루지 못했어. 도르 스칼렛을 조금도 위협하지 못했지. 게다가-”
거기서 말을 끊고, 도르를 다시 보았다. 부드러운 눈빛 속에서 신뢰를 볼 수 있었다.
“포기한 요괴가 이런 짓을 할 것 같아?”
그말에 유카는 도르를 보았다. 포기하고 탁해져있던 눈이 빛을 되찾고 있다. 최초의 자만심도, 망설임도 없다. 곧은 눈으로 유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노려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 시선이 싫어 유카는 기분이 상했다.
“도르는 공격은 못해. 방어밖에 할 수 없어. 하지만… 이제 그 방어는 깨지지 않아. 시험해 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도르에게 쏟아부어 봐. 그래도 너 정도로 도르의 방패는 깨지지 않아.”
“입 닥쳐.”
지금까지의 날카로운 목소리와는 다른, 무섭게 낮은 목소리. 신사 주위의 영압이 강해지고, 유카의 눈에 깃든 살의가 한층 강해진다. 카자미 유카의 전력. 그 영향을 받은 도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도르를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이 믿어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도르, 전부 막아버려.’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막는다. 더 이상 상처주지 않는다. 절대로 지킨다. 플랑의 말에 강하게 수긍하고, 도르는 눈앞에 흰 벽을 전개한다. 그 벽은 평소보다 두껍게 보였다.
“부숴줄게. 그 방패도, 도르 너도, 토리이 위의 너도.”
양산을 한손에 쥐고, 유카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접근한 유카는 전력의 일격을 내리친다. 빠르고 날카로운 일격. 그러나 플랑이 말한 위치로 전개된 도르의 방패에 막힌다. 그 다음부터는, 유카의 일방적인 맹공. 내리치고, 후려치고, 올려치고, 찌른다. 그러나 그 모두가 도르의 방패에 막힌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르고 있지만, 방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쉽게 부술 수 있던 벽이 이제는 너무 단단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도르의 눈이 유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순수한 의지 하나밖에 없다. 지킨다. 그 세 글자만이, 아니, 단 세 글자지만 강력한 의지가 도르를 지탱하고 있다.
이윽고 유카는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는다. 빠른 공격, 묵직한 공격, 모두 지금의 도르에겐 통하지 않는단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가라앉아라. 압도적인 힘 앞에.
뛰어올라 양산의 첨단을 도르에게 향한다. 빛이 수렴하고, 둔색의 빛이 순식간에 방출된다. 샤메이마루 아야를 몰아붙인 마력의 급류를 도르는 피하지도 않았다. 단지 거기에 서서 자신의 능력을 벽 형태에서 결계 형태로 전환했다.
이전에 그 결계는 파츄리의 마법 앞에 한 번 산산조각 난 적이 있다. 그 때 파츄리가 당부했다. 결계는 확실히 전방위를 지켜주지만, 벽 형태보다 강한 공격에 약하다. 지금 유카의 일격은 유카의 제일 강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도르는 확신했다. 이 결계가 깨질 일은 없다고. 아니,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도르를 삼킬 정도로 거대한 급류는 결계에 직격해 굉음을 울리며 결계를 조금씩 깎아나간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지만 도르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어 결계를 강하게 상상했다. 망가지지 말고, 뚫리지 말고, 부서지지 마라. 그렇게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되새긴다.
이윽고 급류는 사라지고, 결계만이 남아있다. 매우 막강한 공격을 견뎌했다.
“가라앉아.”
안심하는 동시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도르가 방금 공격을 막는 것을 예상했던 것처럼, 카자미 유카는 도르의 바로 앞에 있었다. 양손으로 우산을 강하게 쥐고 첨단에 아까보다 많은 요력을 집중시킨 상태로.
순간적으로 도르는 능력을 방패로 전환한다. 그 순간, 아까보다 더 큰 파도가 도르의 벽에 격돌했다.
유카의 모든 요력을 건 혼신의 일격. 제로 거리 강화판 마스터 스파크라고 할까. 레이무도, 아야도, 사쿠야도, 어쩌면 스이카도 견디지 못할 흉악한 공격. 이를 도르는 단 하나의 방패로 막는다. 굉음에 귀가 아프고, 휘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이 없고, 방패를 유지하는 손이 아리다. 그렇지만 도르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힘내! 화이팅 도르! 힘내!’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플랑의 최선의 응원. 그 소리를 들으며 도르는 참는다. 얼마나 아프든 상관없다. 이것을 막은 뒤 쓰러져도 좋다. 절대 지지 않는다.
“으아아아아아!”
고함을 치며 도르는 힘을 쥐어짠다. 한계는 이미 다다른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지킨다.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낸다.
격돌하는 광선과 벽이 굉음을 낸다. 하나는 모든 것을 쓸기 위해, 다른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기 위해.
‘엄청나네… 하지만 끝이야.’
마음속으로 유카는 도르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냈다. 훌륭하다. 방패는 조금 전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견고했다.
그러나 유카에겐 보였다. 그 방패의 한계가. 방금 전의 마력의 격류. 그것을 막은 시점에서 이 방패의 한계가 보였다. 지금도 제로 거리의 공격을 막고 있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 이상의 요력을 아직 유카는 몸 속에 갖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을 더욱 증대시켜, 유카가 내뿜는 둔색의 빛은 더욱 굵어지고, 상승한 위력은 도르의 방패로 견딜 수 없다. 부서질 것이다. 그 광경이 유카에겐 선명하게 떠올랐다.
빠직빠직. 방패에 금이 간다. 벽 전체로 퍼진 금은 곧-
매우 큰, 마치 얼음같은 산이 되었다.
‘…무슨?’
유카는 아연했다. 그것은 마치 빙산이나 암석,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빛나는 거대한 산으로 보였다. 보석처럼 빛나는 카자미 유카보다 훨씬 크고 단단해 보였다.
다음 순간, 유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착각했다고? 저렇게 커다란 걸? 그게 착각이라고…?’
그리고 깨달았다. 도르의 방패의 이변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체에 금이 가있던 방패였을텐데.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채 유카의 공격을 막고 있다. 방패를 전개한 도르는 힘을 모으는 데 필사적이여서 두 눈을 감고 있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무슨 일이지? 대체 뭐가 일어난…?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할 일에는 변함이 없다. 부술 뿐이다. 유카의 안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요력이 있다.
이를 해방하여 단번에.
그리고 유카는 위화감을 느꼈다. 남은 요력은 충분하다. 오랫동안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요력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자신도 아직 얼만큼의 요력이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요력이 있다고 믿고 있었을 줄은.
여기까지 와서 유카는 마침내 알아차렸다. 자신에게 마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아직 남아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을.
‘뭐, 뭐지? 아까부터 대체 뭐지? 내가 내 요력의 양을 착각했다고? 그럴 리 없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그러면 누가, 누가… 설마!’
뇌리를 스치는 광경. 붉은 옷의 무녀가 부적의 칼을 생성해 자신을 베려고 했을 때. 그것을 유카는 몸으로 막았다. 그리고 무녀를 잡았다. 하지만 그 때 무녀는 어쨌는가. 하쿠레이의 무녀의 입 꼬리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유카의 공격에도 웃고 있었다.
“제… 젠장할 무녀!!”
당했다. 그 일격은 유카를 쓰러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를 속이기 위한 레이무 자신을 희생한 공격. 모든 것을 쏟아부은 공격. 아마 요력을 감지되지 않도록 흡수하는 효과의 공격.
그리고 레이무의 뒤를 이은 것은 샤메이마루 아야. 레이무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그녀도 충분히 활약했다. 유카가 요력을 사용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요력의 격류와 방패의 격돌. 그 끝은 빠르게 다가온다. 유카가 내뿜은 요력의 격류가 점차 약해진다. 하쿠레이 레이무, 샤메이마루 아야. 그 둘과의 전투를 통해 유카의 요력은 아름아름 사라져 있었다. 둘이 한 일은 그 순간에는 별거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각각 그 자체로는 유카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 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야말로 전세를 기울일 정도의 영향을.
믿을 수 없어, 유카의 얼굴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둔색의 빛은 약해지고, 사라졌다. 유카의 요력이, 아야의 요력을 먹고 레이무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 정도로 막강한 요력이 공격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순간적으로 유카는 양산을 들어올렸다. 요력은 다했다. 이제 마력의 격류를 쏘는 건 불가능하다. 걷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양산으로 가라앉혀 준다-
갑자기 몸에 충격이 달렸다. 유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까지. 정신이 들면 눈앞에서 방패를 전개하고 있던 작은 소녀가 자신을 안은채로 있었다.
“뭐…”
너무나도 뜻밖의 일에 힘이 다한 유카는 자세를 무너트렸다. 도르가 방패를 해제하고 몸으로 부딪혀올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충격도 줄이지 못하고 유카는 신사로 쓰러졌다. 등의 충격에 고개를 찡그리고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눈치챘다. 작은 소녀가, 강하게, 강하게 자신을 껴안고 있다는 것을.
“절대 상처주지 않아. 절대 놓치 않아.”
지금의 유카도 떨쳐버릴만큼 약한 힘. 그래도 도르는 열심히 유카를 누른다. 아프지도, 아무렇지도 않다.
가슴께에 따뜻함을 느끼고, 유카는 팔의 힘을 빼고 다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면 둔색의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과 싸웠다.
그 속에서 자신이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은 없었다. 쓰러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작디작은 소녀가 일으킨 기적. 위를 향해 쓰러져 억제되고 있다. 상황을 다시 확인하고, 유카는 생각했다.
완패가 아닌가, 라고.
이 상태로 이 소녀를 위협해 쓰러트리는 짓은 유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은 이 작은 소녀의 방패를 부수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레이무와 아야도 협력했던 요력 부족이라는 결말. 그래도 그것을 핑계 삼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산을 무너뜨릴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유카 자신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첫 패배.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였다. 갑자기 발소리를 느껴 둘러보면, 토리이 위에 있던 오니가 내려오고 있었다.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좋은 광경이네. 도르랑 그렇게나 밀착하다니.”
“시끄러워. 죽여버린다. 오니 주제에…”
“어이쿠, 오니 모욕도 거기까지야. 오니를 이긴 적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사천왕 중 하나. 과거에 네가 싸운 오니랑은 차원이 다른 존재야.”
스이카가 발하는 요력을 느끼고, 유카는 코웃음쳤다. 확실히 지금까지 만난 어떤 오니보다도 강할 것이다. 그래도 유카는 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실력을 보이기 위해 내놓았던 요력을 다시 모으고, 스이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최강의 카라스 텐구도, 하쿠레이의 무녀도 넌 이겼어. 틀림없이 강하지. 나도 이길지 확신은 못하겠어. 하지만 이건 확실해. 넌 도르보다 약해. 마음도, 몸도. 어느 것 하나 넌 도르를 이기지 못해.”
그 말에 유카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직도 필사적으로 유카를 누르는 작은 흡혈귀를 보았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나는 이 아이를 이길 수 없어.”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몇 번을 해도 도르의 방어를 뚫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길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번의 패배는 유카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지금”의 자신은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유카는 도르에게 강한 관심이 생겼다. 몸은 작지만 강한 힘을 지닌 소녀. 이 소녀를 언젠가 반드시 쓰러트린다.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도르에게 비키라고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도르가 승자임을 말하려고 손을 뻗쳤고, 그 손은 정지했다.
조금 전까지 강하게 자신을 누르던 소녀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나 도르를 바라본다. 숨은 붙어있다. 죽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표정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다. 이마에 손을 대 봐도 열은 느껴지지 않았다. 갑작스런 사태에 유카는 스이카에게 고함쳤다.
“사천왕! 이게 어떻게 된거야!”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믿었던 스이카도 도르의 이런 상태는 처음 보는 듯 했다. 유카는 어떻게 할지 전혀 몰랐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누구에게? 애시당초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유카는 아는 요괴가 없었다. 작은 몸을 흔들며 유카는 격앙한다.
“장난치지마 도르 스칼렛! 나를 이겨두고, 이렇게 되는 게 어딨어? 이런 건 용납 못해!”
처음 자신을 이긴 존재.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유카는 용납할 수 없다. 도르가 사라지면 유카의 세계는 다시 빛을 잃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누구라도 좋아. 이 아이를 살려줘.
그것은 유카의 첫 소원이었다. 1000년 이상의 시간에서 처음으로 생각한 그녀의 바램.
그리고 행운이 따랐다. 다름 아닌 유카가 죽이려고 한 요괴에게서.
“가진 요력을 도르에게 흘려넣어.”
찰나, 공간이 “열렸다.” 뻥 뚫린 공간에는 무수한 눈이 있어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 안에서, 금발의 여성-환상향 최강의 요괴, 야쿠모 유카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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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만난 세 체의 요괴란게 뭘까요? 이전 화들을 읽어봐도 그런 묘사는 못 찾았고 주연급이라고 해도 유카랑 아야 둘인데.. 일단 그냥 잡요괴 셋을 만났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2. 작가 후기에서도 나오지만, 카자미 유카가 본 도르의 방패와는 다른 산은 무언가 떡밥입니다.(다 읽은 적이 있지만 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안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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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32화: 세계의 끝
동방화영총
난이도 Extra
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6. 세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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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
미친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모든 요력을 해방하는 아야.
그 모습을 보고 유카도 제일 즐겁게 웃으며, 처음으로 자신이 달려들었다. 달리기 시작하자 아야도 지면을 박찬다. 오른손에 든 양산을 치켜들어, 유카는 혼신의 힘으로 내리친다.
그 일격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아야의 부채와 격돌했다. 양산과 부채에서 나오리라 생각되지 않는 굉음이 해바라기의 밭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치고받는 것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먼저 공격한 것은 아야. 이제 타고난 스피드를 전력으로 발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재빠른 공격이 특기인 그녀는 먼저 연격으로 공격한다.
사방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유카는 반대로 양산 하나만으로 막았다. 부채도, 부채에 뒤따라오는 바람도, 바람에 뒤따라오는 바위도 전부.
아야 때문에 조금 전부터 계속해서 서 있을 수 없는 정도의 바람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카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바위마저 날려보내는 풍력도 유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야는 양산을 조금 쳐내 거리를 두었다. 속도를 발휘할 수 없는 이상 환상풍미는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것이 문장이 낼 수 있는 전력.
“회오리 「천손강림의 이정표」”
자신을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발생시켜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아야의 필살기. 말려든 대상은 풍압에 의해 잘게 압살당한다.
그것은 유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야가 조금 거리를 두고 있어 완전히 방심했던 유카는 그 회오리의 범위에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놀랐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바람은 도망갈 길을 막고 그 몸에 강하게 부딪혔다. 잘게 찢어져 으깨질 것이다. 그 바람을 날린 아야는 승리를 확신했다. 완전히 이겼다. 이 바람에 견딜 수 있는 요괴는 없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 전복된다. 승리를 확신했던 아야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바람이 멎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멸했다. 단지 한 행동, 유카가 강하게 양산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 회오리는 흩어졌다. 그 광경에 아야는 말을 잃었다. 말도 안돼. 그런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눈앞에 선 이상할 만큼 요력을 뿜어내는 괴물은 씨익 웃었다.
“마지막은 요력에 비해 꽤 즐길 만 했어.”
타이밍은 완벽했다. 위력도 더할 나위 없이 아야의 전력을 쏟아부었다. 유카가 휩쓸린 순간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답은 하나, 아야의 요력이다. 강력한 바람의 칼날의 근원을 따라가면 요력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바람은 바람과 요력이 혼합된 것이니까.
그래서 유카는 흡수했다. 아야의 요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유카의 요력으로 먹어치웠다. 자신의 요력이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응. 그것을 본 아야가 품은 감정은 절망 뿐일 것이다.
유카의 양산이 다가온다. 빈틈투성이의 아야에겐 막을 수단이 없다. 끝이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끝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것은 아야였다.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그녀의 회오리가 그 정도의 위력일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그녀의 요력 전부를 걸어 여기까지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완벽했다. 그 일격도, 그것이 깨졌을 때의 절망의 표정도.
그리고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그 모두가 가짜라고.
태양의 밭에서 도망칠 때 아야는 유카에게 따라잡혔다. 분노에 맡긴 전신전령의 공격조차 유카는 막았다. 그리고 유카의 요력의 격류에 삼켜진 아야는 겨우 일어나 속도를 포기했다. 기술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녀가 더 이상 속도를 무기로 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하기엔 충분한 소재가 갖춰져 있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착각할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환상풍미.”
모든 것을 건 아야의 일격이 승리를 확신한 유카에게 육박한다. 지금까지 있던 모든 것은 페이크.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건 아야의 일생에서 가장 큰 도박. 그리고 그 도박에서 아야는 이긴 것이다. 유카는 방심하고 있다. 그리고 찰나에 그녀는 절명한다. 자신의 전력을 다한 일격에 무릎꿇을 것이다.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아야의 작전은 완벽했다. 즉석에서 생각한 작전 치고 능숙했다. 분노의 감정은 확실히 있었지만, 이 작전의 포석에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속일 수 있었다. 진심이 섞인 거짓말처럼 감쪽같은 거짓말은 없으니까.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이 결말을. 그녀의 마지막 일격을. 아마,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 한 존재를 제외하고는.
“크헉…”
충격이 아야의 머리를 관통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았다.
왜, 왜, 왜,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마력으로 코팅된 양산으로 아야의 머리를 찔러, 아야를 땅으로 쓰러트렸다.
그녀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상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최강의 카라스 텐구가 이런 재주를 부려줄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부수는 자신의 모습을 열망했다.
그녀는 믿고 있었다. 아야의 말을 믿은 것이 아니다. 아야가 그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힘과 기술 모두를 믿었다.
그리고 박살냈다. 모든 것을 쓰고 한계도 넘어 극한에 이른 아야를 격파했다. 끝없는 전율이 유카를 충족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승패는 확정되었다.
그래도 아야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을 지든, 몇 번을 쓰러지든 일어선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유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쉽게 질린다. 이 싸움에서조차 그녀는 질려 버렸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하는 아야를 유카는 밟았다.
오른쪽 무릎에 체중을 실어 아야의 등을 눌렀다. 그것만으로도 아야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그 얼굴을 힐끗 보고 유카는 비웃었다. 여기부터는 승자만의 시간이다.
“카라스 텐구의 날개는 예쁘지. 항상 뜯어줬지. 네 어머니도 똑같이.”
“아… 끄아아아악!!”
아야의 날개를 난폭하게 잡아 힘껏 당겼다. 뿌득뿌득 소리를 내며 날개가 뜯겨진다. 목이 망가질 정도의 비명이 밭에 울린다. 날개는 카라스 텐구에게 있어 목숨과도 같다. 그것이 시원스레 유린된다. 아야의 목소리가 약해진다. 그녀의 생명이 희미해진다.
“그만…”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눈앞에는 친구라고 말해준 아야가 괴로워하고 있다.
“그만해…”
그녀의 날개를 가차없이 잡아당기는 광기로 얼굴을 왜곡시킨 유카.
그 둘의 모습에 도르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가슴이 죄이는 느낌은 아니다. 답답한 것도 아니다. 그 동안 가슴을 메웠던 공포는 사라졌다. 대신 치솟은 것은 충동적이고 강한 감정. 마그마처럼 뜨거운 감정.
그것은 도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분노의 감정이었다.
“그만둬!!”
고함치며 달려가 도르는 유카를 들이받았다. 의외의 공격에 유카는 휘청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야의 날개는 뒤틀리고 망가져 있었다. 서둘러 치유 마법을 걸지만, 피해가 심해 금방 나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열심히 치료하는 도르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한 여성이 있었다.
카자미 유카의 세계는 다시 흑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카에겐 필사적으로 아야를 치료할 수 밖에 없는 도르가 너무 작은 존재로 여겨졌다. 죽을 가치는 있어도 살 가치는 없었다. 처음에는 도르가 가진 방어 능력에 흥미를 가졌었다.
지금의 치유 마법에도 흥미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도르가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는 변화가 없었다. 즉, 유카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존재였다.
“이제 됐어.”
불쑥 중얼거린 말에 도르가 고개를 든다. 그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려 매우 애잔했다.
“시시하네. 재미없어. 이제 그냥 죽어.”
꽃에 모인 곤충을 죽이듯, 유카는 양산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치유에 전념하고 있는 도르가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그 눈에서 체념이 보였을 때,
유카의 세계에서 반짝였던 도르 스칼렛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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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로는 딱히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음 화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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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네요.. 그래도 주 2회는 올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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