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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27화: 사라지지 않는 악몽
동방화영총
난이도 Extra
동행자 샤메이마루 아야
1. 사라지지 않는 악몽
불타며 무너지는 민가. 그리고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동족들. 자욱한 연기에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지만 소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달렸다.
자신의 집의 잔해더미에 깔려 괴롭게 신음하는 텐구, 작열하는 화염에 삼켜지며 비명을 지르는 텐구, 수많은 텐구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었지만 곧 정신을 잃고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싫고 답답했다.
그 소녀는 너무 어리고, 무력했다.
소녀는 무너진 지붕을 치울 수 없다. 화염을 없앨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단 한명의 여성을 계속 찾고 있었다. 자신을 거두고 마치 가족처럼 대해준 여성이 걱정되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과 달리 강하다. 이런 절망으로 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웃는 얼굴로 맞이해줄 것이다, 그렇게 소녀는 믿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위화감이 있었다. 말로 표현 못할 불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마을 광장에 도착했을 때 확신으로 바뀌었다.
“꽤 강하구나, 너.”
그렇게 즐겁게 웃는 여성의 얼굴은 자욱한 연기 때문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근처에 있던 여성의 얼굴은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소녀가 찾던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도 소녀의 존재를 깨달았다. 힘없이 눈을 뜨곤 입술을 강하게 악물었다.
“…뭐하는거야! 빨리 도망쳐!”
부드러운 그녀에게선 상상도 못할 강한 음색에 소녀는 몸을 떨었다. 여성은 소녀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곧바로 일어나 요괴와 대치했다. 몸은 너덜너덜하고, 서 있기만 해도 휘청거리고 있었다. 만신창이인 것은 소녀의 눈에도 분명했다.
안돼요. 당신도 같이 도망가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그저 말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은 사력을 다하여 요괴를 공격한다. 몇 번이고 빠르고 날카롭게 공격하지만, 그 요괴에겐 소용이 없었다.
어떤 공격도 그 요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단검으로 재빠르게 베는 공격도, 무섭도록 빠른 발차기도, 그 요괴는 그저 웃으면서 받아내고 보답이라도 하듯 손에 쥔 우산을 그녀에게 휘두른다.
그리고 뼈가 부서지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맞고 날아가 지면을 구르는, 소녀의 곁에서 등을 대고 하늘을 보고있는 여성의 손을 소녀는 잡았다. 그녀는 소녀의 손을 왼손으로 강하게 잡고 소리쳤다.
“도망가! 제발… 부탁이니까… 도망쳐…”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힘겹게 일어나 요괴에게 맞서는 모습도, 두려움에 다리를 떠는 모습도 본 적이 없었다.
“가… 빨리 가라고오오오!!!”
절규하는 소리를 들은 소녀는 곧바로 뛰쳐나갔다. 작은 몸으로 소녀는 달리고, 달리고, 달린다. 몇 번이나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그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산을 타고 올라간 소녀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절망했다. 자신을 거둬 준, 상냥한 자들이 많던 마을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어린 나이에 드문 능력을 갖고있던 소녀는 그 광경을 보았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여성의 깃털을, 요괴가 웃으며 잡아뜯는 것을. 여성이 비통하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그만, 그만해.
웃어주었다. 만지게 해주었다. 감싸주었다. 검고 큰 날개. 자신과 같지만, 자신보다 따뜻하고 커다란 날개.
그것은 너 따위가 만질 것이 아니다. 손을 떼, 괴물.
의연하게 노려보는 시선의 끝에는 요괴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 피가 묻은 채 미친 듯이 웃는 그 얼굴에 소녀는 두려워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마나 한심한 모습일까. 그래도 공포를 떨치고 다시 벌떡 일어나 어떻게든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이제 요괴는 없었다.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여성 뿐.
그 모습을 보고 소녀는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가라는 여성의 말도 완전히 머리에서 사라졌다.
산을 뛰어내려가 여성의 곁으로 달려간다. 여성은 전신이 너덜너덜하고 아름다운 검은 날개는 뿌리부터 무참히 찢겨있었다.
여성의 몸을 안고, 소녀는 그녀를 흔들며 이름을 계속 부른다.
계속해서 부르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비치는 불꽃은 미약했고 소녀가 보기에도 곧 꺼질 것이 분명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천천히 소녀의 뺨에 닿는다. 피에 젖은 그 손가락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여성은 가냘프게 목소리를 내었다.
“가… 너는… 넌 이런 곳에서 죽어선 안돼. 친구도 만나고, 멋진 사람이랑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리고 웃으렴. 너는… 웃는 얼굴이 어울리니까… 응?”
“안돼요, 안돼. 죽지말아요. 당신이 없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요…”
뺨에 뻗은 손을 잡고 두 손으로 강하게 쥔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뺨의 피를 씻어낸다.
“괜찮아. 이제, 이제 겨우… 웃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것이 소녀가 마지막으로 본 여성의 미소였다. 최후의 미소는 매우 깨끗하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고,
그리고 소녀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녀의 마지막 웃는 얼굴이 되었다.
이불을 차내며 샤메이마루 아야는 벌떡 일어났다. 잠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더운 것은 아니다.
“또… 그 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아야는 숨을 깊게 내쉰다. 1000년이 넘게 지난 꺼림칙한 기억.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몇 번이고 악몽으로 나타난다.
만약 자신에게 지금 같은 힘이 있었다면 결과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몇 번 그렇게 생각하고, 무력을 한탄했다.
만약의 이야기를 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만, 아직도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죽인 요괴를 잊지는 않았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고향을 덮쳐, 소중한 사람을 빼앗은 그 요괴를 이 손으로 죽일 때까지는.
이불에서 나와, 목재 창문을 양손으로 열고 밖을 바라본다. 날씨는 맑음. 올려다보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에 실려 나무의 향이 방 안으로 불어온다. 어둡고 습한 마음과는 달리 산에선 기분좋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추위가 남아있는 햇빛도 닿지 않는 땅. 지상을 버린 요괴들이 사는 마지막 낙원인 지저. 맑은 강줄기를 옆에 끼고 두 대요괴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산의 사천왕으로 작은 체형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양의 요력을 자아내고, 용맹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부키 스이카,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천왕이고 스이카와 오랜 교제를 한 호시구마 유기.
환상향 전역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힐 대요괴인 둘은 술을 마시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왔다.
“스이카, 너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그 도르? 라는 녀석은 꽤 하는 놈인 것 같네.”
“당연하잖아, 내가 인정한 가족이야.”
“헤에, 설마 네 입에서 가족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기술의 이부키 스이카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다니 꼭 싸워보고 싶네.”
“도르는 너랑 다르게 섬세하니까, 그만 둬.”
무엇보다, 대화의 소재는 단 한 명의 흡혈귀 소녀였지만.
“에이, 난 그 하얀 방패란 것을 부숴보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 방패를 깬 요괴는 있어?”
“아, 난 본 적 없어. 그치만 유카리나 나, 영원한 공주의 수행원 등이 진심으로 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명이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단지 꽤 오랜만에 만났고, 그 만남도 우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기는 도르에 대한 소문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스이카가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따라서 술안주로는, 그 도르 스칼렛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유기의 말에서 스이카는 환상향에서 도르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왈, 무해한 마을의 마스코트 소녀. 요괴 가라사대, 절대로 손을 대면 안될 존재.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다. 도르 자신의 사랑스러움은 인간 사이에서, 그리고 그 인맥의 넓이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요괴 사이에서 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로 여기까지 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야? 넌 여길 싫어했잖아. 그 도르라는 녀석이 관련된거냐?”
유기의 질문에 스이카는 눈에 띄게 불편해했다. 도르에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말한 뒤 한동안 행동에 옮기지 않은 것은 잊은 것이 아니다. 이 지저에 오는 것이 꺼려졌을 뿐이다. 이것이 유기를 만날 뿐이라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목표는 스이카가 가장 싫어하는 요괴였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 드물다고 생각되지만.
“아, 뭐, 잠깐 도르를 위해서 지령전의 주인을 만나려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유기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유기도 스스로 지저에 살고 있지만, 지저의 주인은 역시 불편한 것 같다. 조금 생각한 뒤 유기는 스이카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스이카, 도르의 문제란 게 뭐냐? 나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 어떻게 하더라도 유기의 힘은 도움이 안 될거야.”
스이카의 분명한 거절에 유기는 어깨를 떨어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이다. 도르가 갖고 있는 문제는 정신적인 측면이 강하고, 육체적 측면의 능력인 유기의 힘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령전의 주인과 같은 정신계 능력이 아니라면.
“그치만 도르라는 애는 강하다며? 그러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거 아냐?”
“…나도 그렇게 믿고싶어. 하지만 그건 너무 불안해.”
“…뭔가 있나보네. 뭐, 깊이는 안 물을게. 열심히 해봐. 가족을 위해.”
격려하며 유기는 술병을 기울여 절친의 잔에 따른다. 감사를 표하고 스이카는 그것을 단숨에 마신다.
그렇게 몇 차례 술잔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갑자기 유기가 물었다.
“스이카, 슬슬 각오를 하는 건 어때?”
“음… 아니, 나도 코메이지 사토리는 질색이야.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줘.”
“한심하네. 그러고도 산의 사천왕이야?”
쿡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유기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스이카는 돌려주었다.
“그러면 너는 갈 수 있어?”
“아, 춥다. 갑자기 몸이 떨리네.”
일부로 몸을 떠는 유기를 보면서 스이카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이 자리를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
무서울 정도로 큰 대나무로 둘러싸인 영원정. 자연의 정취가 넘치는 이 건물의 주인 호라이산 카구야도 어떤 흡혈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그녀의 종자, 야고코로 에이린.
하지만 그들의 대화 내용은 지저와는 조금 다르다.
“괜찮을까, 도르는.”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요, 공주님.”
달의 두뇌라고도 불리는 종자의 발언에 카구야는 뺨을 부풀렸다.
“또 그렇게 부르네. 둘만 있을때는 옛날처럼 해.”
“네네, 미안해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
봉래의 약을 먹고 유구한 해를 살아도 카구야는 자신의 자식같은 존재다. 그것이 에이린이 카구야에게 갖는 솔직한 평가다. 물론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능력으로는 물론 카구야 쪽이 더 뛰어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도르와 다르지 않다.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그래서 호기심이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자신이 지켜야 한다. 달의 사자가 오더라도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다.
이미 달의 사자가 오지 않는 것은 유카리의 설명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힘없는 흡혈귀는 누가 지켜줄까? 산의 사천왕? 요괴의 현자?
사고를 뻗어나가는 도중 방울이 구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비록 사생활이여도 그녀의 말은 절대적이다.
에이린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귀를 기울였다.
“플랑도르 스칼렛의 육체는 영원에 가까운 것이여도 그 안에 들어있는 도르의 정신은 그에 비하면 한순간인 인간의 것이지. 하지만 도르가 알고 있는 것은 환상향 뿐. 영원한 몸에 깃든 지금까지는 제대로 살 수 없었던 소녀. 지금이라면 그녀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지금까지 못했던, 참아왔던 것을 얼마든지. 무의식적으로 삶에 집착하는 것은… 필연이야. 그러니까… 그래서 그녀는 플랑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지.”
“무슨 소리죠?”
에이린의 말에 카구야는 천천히 돌아본다. 달빛에 비친 미소는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
“그녀가… 도르가 찾고 있는 것은 플랑도르를 정신으로부터 분리하는 방법이지.”
그 뒤 이어지는 카구야의 말에 에이린은 수십년만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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