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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19화: 고백과 은닉
동방췌몽상
난이도 Easy
동행자 이부키 스이카
3. 고백과 은닉
무성한 나뭇잎에 다리를 베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나아간다.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산길. 오르는 것은 두 번째지만, 어제보다는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언덕길을 계속 오른 끝에는 다른 나무들과 떨어진 곳에 핀 한 그루의 커다란 벚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큰 바위가 놓여 있고, 위에는
“오, 도르. 안녕.”
어제와 같은 모습, 같은 동작으로 술잔을 기울이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미소로 이부키 스이카는 도르에게 말을 걸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몸은 벚나무가 아닌 도르가 올라온 언덕을 향해 있었다.
“안녕, 스이카.”
도르도 방긋 미소짓고 어제처럼 스이카의 옆에 앉는다. 호탕하게 옆에서 술을 마시는 스이카를 도르는 그저 웃으며 지켜봤다.
“그러고보니, 도르는 연회에 가지 않아?”
“응? 응, 하쿠레이 신사의 연회에는 참가해. 그치만 난 술을 못 마시니까 주스를 마실 뿐이야.”
“그래? 연회는 좋아해?”
스이카의 질문에 도르는 조금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따. 연회 자체는 싫지 않다. 그런 밝은 분위기는 이전 세계에서는 맛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빈도가 너무 심하단 생각도 들었다.
“응, 연회는 좋지만 최근엔 빈도가 심해서 곤란해.”
“빈도?”
“아, 응. 최근엔 하쿠레이 신사에서 연회가 너무 많아서… 조금 피곤했다고 할까…”
도르의 말에 스이카는 순간 시선을 내렸지만 다음 순간 도르에게 미소를 보였다.
“뭐 그런거야. 뭐든 너무 많은 건 곤란해.”
피식 미소짓고, 스이카는 술잔을 기울인다. 그 모습을 보고 도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스이카도 과음이야. 술도 많이 마시면 몸에 나빠.”
“난 괜찮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또…”
스이카와의 대화가 재미있어 도르는 자연스레 미소가 넘쳤다. 스이카는 지금까지 환상향에서 만난 요괴 중 가장 파장이 맞는 타입이었다. 물론 앨리스나 레이무 등 사이가 좋은 사람은 있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한편으로는 신나는 존재는 이부키 스이카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난 듯 스이카는 목소리를 높인다. 활짝 웃으며, 도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도르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어?”
“아, 그거 말인데 스이카. 나는 강한 요괴가 아니야. 그래서 능력은 없어.”
“…응?”
붉던 스이카의 얼굴이 갑자기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온다.
“도르, 너 대요괴 아니야?”
“으응, 아니야.”
도르에게서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스이카는 납득한 듯 수긍했다.
“과연, 즉 요기를 숨긴 게 아니라, 원래 없었다는 얘기? 이것 참!”
“호탕하게 웃는 스이카를 향한 머릿속의 플랑의 노호가 들린다. 물론 들릴 리 없기에 스이카는 계속 웃다가 조금 신기한 눈으로 도르를 보았다.”
“음, 도르. 너 그럼 아무것도 못하는거야? 네가 아무것도 못한다는건 믿기지 않는데…”
“회복 마법이랑 방어 마법은 쓸 수 있어. 하지만 공격은 전혀 못해…”
약간 침울해진 도르를 보며, 스이카는 무언가 생각하는 기색을 보인다.
“저기 도르, 그 방어 마법, 보여주지 않을래?”
“에? 응.”
스이카의 말대로 도르는 자신의 앞에 장벽을 만들어낸다. 순간, 스이카의 주먹이 내리쳐 굉음을 울린다. 갑작스런 일에 도르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는다. 주먹을 푼 스이카는 미안한 표정으로 황급히 도르에게 접근했다.
“괘, 괜찮아 도르? 미안, 조금 시험해보려고…”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니까…”
쓰게 웃으며 괜찮다는 손짓을 하면, 스이카는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하얀 장벽을 보면서 그 구성에 놀란 듯 했다.
“그래도 굉장하네. 시험이라고 했지만 상당히 세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꿈쩍도 안하다니.”
스이카의 말대로 도르의 장벽은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스이카의 주먹을 받을 때 요동은 쳤지만 그 뿐이었다. 장벽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스이카는 고민하는 얼굴을 한다.
“마법의 결계…인가? 본 적 없는 마법이야.”
“응, 파츄리와 앨리스도 그렇게 말했다.”
도르가 쓰는 하얀 장벽은 파츄리도 앨리스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스이카도 마찬가지인지 먼젓번의 둘처럼 가만히 장벽을 관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는 것은 이 장벽은 모든 것을 막고 깨진 적은 없다는 것 뿐.
지금까지의 전투를 떠올리며 도르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눈앞의 작은 오니 소녀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스이카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어?”
“나? 나는 밀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어. 간단히 말하면 모으거나 흩을 수 있는 능력이고, 힘을 모으거나 커질 수도 있어. 예를 들면… 뭐 이런거?”
자랑스럽게 말하는 스이카를 보며 도르가 든 생각은, 뭔가 잘 모르겠지만 굉장하다, 였다.
“클수 있다는 건 키가 커질수도 있는건가… 좋겠다…”
‘…플랑도 커지고 싶어.’
중얼거린 말에 토라진 플랑. 그것을 작은 소리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플랑은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은 듯 곧바로 괜찮다고 쾌활하게 대답해주었다.
“사용법이 키가 커지는 거라니, 재밌는 생각을 하니.”
스이카는 또다시 깔깔 웃으며 이부키효를 기울인다. 그 두레박을 도르가 뺏었다.
“앗, 뭐하는거야!”
“스이카, 과음이야. 슬슬 그만하라고?”
“…뭐 밤도 늦었고, 도르가 그러니 오늘은 이만 마실까.”
스이카의 말대로 해는 벌써 저물어 있었다. 생각보다 이야기에 열중해 버린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를 들으며 도르는 슬슬 돌아갈까 생각했다. 바위에서 일어나 출구로 향한다. 도중에 뒤돌아보면 스이카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상냥함에 기뻐해야 할텐데, 도르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 수 밖에 없었다.
“저기 도르 씨, 아직이에요?”
다음날 오후, 도르는 언제나 그렇듯 감미처 앞에서 간판 아가씨로 일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긴 의자를 전부 차지해 누워, 한가로이 발을 흔드는 아야가 있었다. 행동이 나쁜 것 외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야를 꼭 한번씩 보기 때문에 그만두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도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야가 온 지 벌써 네 시간이 경과하고 있었다.
최근 유유코는 이틀에 한 번씩 왔기 때문에 오늘도 올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빗나간 것 같다. 유카리, 유유코 두 명에게 연락을 취할 수 없는 도르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가끔 보일듯한 아야의 치마를 살짝 보면서 일을 계속한다. 덧붙여 한번 가만히 관찰해 보았지만, 어떤 구조인지 속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뭔가 마법 같은 것을 쓰는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리는 치마를 보다보면, 시야의 구석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그곳을 바라보면 길을 걷는 세 사람.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키리사메 마리사, 하쿠레이 레이무. 항상 각각 오던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은 어딘가 신선했다.
“안녕, 도르.”
“안녕하세요 앨리스. 오늘은 셋이서 연회의 장보기?”
오늘 밤은 하쿠레이 신사에서 연회. 그것을 알고있던 도르는 앨리스에게 묻는다. 연회를 위한 장보기라면 셋이 함께 있는것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야 도르? 오늘 연회는 없어.”
그렇게 말하며 앨리스는 레이무에게 확인한다. 레이무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
의외의 반응에 도르는 혼란스러웠다. 날짜를 착각했을까? 아니, 아무리 싫다고 해도 상당한 빈도로 하고 있었다. 다음 개최일이 언제인지 착각한 것은 아니다.
‘도르는 틀리지 않았어. 앨리스랑 레이무가 이상한거라고 생각해.’
플랑은 도르의 편을 들었다. 자신과 플랑 둘이 같이 착각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이상한 건 앨리스 일행들. 그렇다면 이변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도르는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저기 레이무, 부탁이 있는데.”
“응?”
유카리는 오지 않았지만 레이무가 온 것도 마침 잘 된 일이었다.
“유카리 씨를 불러줄 수 있어? 가능한 빨리.”
“알았어. 내일 여기 오게 할게.”
오게 한다는 말에 도르는 약간 당황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돌아보고 긴 의자에 몸을 쭉 펴고 있는 샤메이마루에게 말을 걸었따.
“그렇다고 하니, 죄송해요 아야 씨. 내일 다시 오시겠어요?”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아야? 너가 어째서 여기에?”
도르의 말에 아야를 발견한 레이무는 왜 여기있는지 따졌다. 그러나 아야는 실실 웃더니 그대로 하늘 높이날아오른다. 바람의 힘을 사용한 것이지만, 그것을 모르는 도르는 멍한 얼굴로 하늘에 뜬 아야를 바라보고 있었따. 시선의 끝의 그녀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갔지만 그것도 도르에겐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뭐, 방해꾼도 없어졌으니, 도르 옆에서 먹을게.”
곧 흥미가 사라진 레이무는 그렇게 말하고 감미처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세 사람에게 연회에 대해 다시 들었지만,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최근 발길을 옮기는 벚나무는 사람이 만든 길이 아닌 짐승이 다니는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외에도 상당히 가파른 언덕길에 계속되므로 가는 것만으로도 여간 고생이 아니였다. 왜 날아가지 않냐고 한다면, 그 이유는 상공에서는 위치를 모른다는 한 가지 뿐이다. 그 벚나무는 주위의 나무보다 키가 작아 정확히 가려지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가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 짐승의 길을 조금 재밌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간신히 오른 비탈길의 끝에는, 몰아치는 벚꽃잎과 작은 오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같은 과정으로 도르는 스이카에게 도착했다.
“안녕 도르. 오느라 수고했어.”
마치 오는 타이밍을 알고 있었던 듯 상반신만 뒤로 돌려 스이카는 손을 흔든다. 도르도 미소지으며 같은 동작으로 반응했다. 조금 더 걸어 스이카의 옆 바위에 앉았다. 최근 도르의 고정석. 스이카와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어쩐지 기분 좋았다.
“…도르, 오늘 연회는 재밌었어?”
“그, 그래.”
그다지 목적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도르는 조금 의아한 얼굴은 짓는다. 스이카는 무언가 말을 고르는 듯 했지만 뜻을 결정한 듯 고개를 힘차게 들었다.
“아, 있잖아. 그… 연회가 자주 일어난 원인은 나야! 미안해!”
효과음이 나올듯한 기세로 고개를 숙인 스이카에게 도르는 무엇이라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난 다른 오니가 지저로 돌아가 버려서 지루해서… 그래서 연회를 몇 번이나 연거야…”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점차 작아져, 급기야 마지막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도르는 스이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분명히 알았다. 잦은 연회. 이변이라 불릴 정도인 그 현상을 일으키던 것은 눈앞의 작은 오니 소녀. 하지만 그 이변을 스이카의 손으로 그만두었다. 그러니 자신이 참견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할 말은 하나.
“고마워 스이카. 연회를 멈춰줘서.”
자신이 싫어했기 때문에 스이카는 연회를 멈췄구나. 그런 생각을 시선에 담아 도르는 미소를 보인다. 스이카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그래도 조금 두려운 기색으로 모습ㅇ르 살폈다.
“화내지 않아?”
“화나지 않았어. 연회는 스이카가 외로워서 연 거고, 이제 다시 이변을 일으키지 않는 건 외롭지 않기 때문이지?”
“응, 이젠 더 이상 외롭지 않아. 너가… 도르가 놀러와주니까.”
꽃이 필 듯한 미소였다. 바람이 불고 벚꽃잎이 도르와 스이카를 감싸며 날린다.
“그런데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도르, 너 고민하는 게 있지?”
불던 바람이 갑자기 싸늘해지는 것을, 도르는 확실히 느꼈다. 조금 전까지의 기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스이카의 말에, 도르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아니, 괜찮아. 도르가 말할 때까지 기다릴게. 언젠간 말해줘?”
스이카는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고민이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임을. 스이카는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이대로 말하지 않아도 계속 친구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은가? 스이카는 비난받을 각오로 이변의 전모를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진실을 가슴에 묻어도 좋은 것인가?
다양한 생각이 도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말해야한다. 그것은 알고있지만, 말했을 때 스이카는 어떻게 생각할까? 말한 후에도… 변함없이 대해줄까? 결국 이 날 도르는 스이카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최근의 마을 모습이나 스이카가 낮 동안 무엇을 하는지 등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만 여전히 도르는 진심으로 즐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스이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즐겁게 말한 듯한 두 명이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의 거리는 확실하게 멀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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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텐구와의 교류
해도 완전히 떨어진 밤, 스이카와 도르는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에 마법의 숲, 미혹의 죽림과 해바라기 밭, 지저의 입구, 무연총 등을 간단하게나마 안내받았다. 도중에 요괴에게 습격당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부 스이카가 벌레를 잡듯 간단하게 해치웠다.
홍마관과 하쿠레이 신사는 도르가 더 잘 알고 있기에 제외했지만, 그렇다 쳐도 환상향의 대부분을 안내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기가 마을이야. 뭐 네가 더 잘 알겠지만.”
그렇게 스이카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무언가 기분이 나빠진 것을 도르는 감지했다.
“왜 그래?”
도르의 말에 자신이 마을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자각했는지, 스이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 이상한 모습을 보였네. 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래?”
“오면서도 말했지만, 우리 오니는 원래 인간을 좋아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에 관해서는 도중에 스이카에게 얘기 해달라고 했다. 지저에서 나온 오니는 요괴의 산에 군림하며 그 힘은 무적과도 같았다. 그리고 오니는 강한 것을 좋아했다. 강자라면 그것이 요괴든 인간이든 상관 없었따.
그래서 스이카는 인간과 싸운 적도 있고,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오니는 인간에게 실망하고 지저로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왜 우리가 지저로 돌아갔는지, 아니 왜 인간에게 실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야.”
어딘가 애수를 풍기는 모습으로, 스이카는 말을 이엇다.
“옛날 사람들은 용기가 있었어. 혼자서 우리 오니와 싸우는 인간도 있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비겁한 수단을 썼어. 속이는 형태로 우리를 공격했지.”
먼눈을 하며 스이카는 말을 계속했다. 그 눈동자에는 인간에 대한 경멸이 떠 있었다.
“인간은 변했어. 지금의 인간은 너무 약하고… 그리고 어리석어. 그래서 동료 오니들은 모두 단념하고, 지저로 돌아갔어.”
인간에 대한 절망과 분노, 그 양 감정이 모두 스이카의 표정에 역력했다. 슬픈 듯 마을을 바라보는 스이카와 달리 도르에겐 형언하지 못할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었다.
자신은 스이카가 싫어하는 인간, 그래서 그녀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스이카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솔직하게 인간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스이카는 혼자서 환상향에 남은거야?”
하지만 나온 말을 전혀 다른 것이었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무서워 고백할 수 없었다.
“그래. 나는 혼자서 계속…”
쓸쓸하게 바뀐 스이카의 눈을 본 도르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내일도 스이카를 보러 올게. 아니, 수시로 만나러 올게. 괜찮을까?”
“…도르”
놀란 얼굴로 도르를 바라보던 스이카는 이윽고 웃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벚나무 아래에서 기다릴게. 그러니까 언제든지 와.”
이 날 두 명은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도르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스이카와 헤어졌지만, 그 속에는 답답함이 남아있는 채였다.
봄이 되면 기온이 높아지기 때문에, 가게 앞에 서 있을때의 괴로움은 상당히 줄어있다. 겨울에는 적었던 거리의 인파도 최근에는 많아져 붐비는 것 같다.
감미처를 방문하는 사람, 뿐 아니라 요괴는 도르가 아는 한 레이무와 마리사, 앨리스가 거의 매일, 유카리, 유유코, 요우무가 가끔이었지만 오늘은 드물게도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조금 쓸쓸한 기분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으므로 눈을 감았다.
“오, 도르, 오늘도 일?”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면 손에 책을 들고 케이네가 서 있었다. 서당에서 수업이 끝난 뒤 도르는 감미처에 바로 오므로, 케이네는 남은 일을 끝내고 왔을 것이다. 조금 지친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케이네는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양갱을 가진 케이네가 안에서 나와 도르 옆에 앉았다. 참고로 이 자리는 앨리스와 레이무를 비롯한 유카리, 유유코 등의 대요괴가 앉는 경우가 많아 그녀들이 없을 땐 기본적으로 공석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스럽게 피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앉는 것이 실로 케이네답다.
“그래도 도르는 정말 성실하구나. 도르의 수업 태도도 그렇고, 선생님은 자랑스럽단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케이네에게 도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뇨, 저는 지금까지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갔기 때문에…”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에 케이네는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말을 더한다.
“그, 그렇구나. 그래도 개의치 마, 이제부터 즐기면 되니까. 그렇지?”
“네!”
우울한 표정을 풀고 미소로 대답하면 케이네는 응응 끄덕이며 같이 웃었다. 그대로 사적인 잡담을 조금 하고, 케이네는 볼 일이 있다고 집으로 돌아갔다.
케이네가 떠나고 나서 도르는 무료해졌다. 머지않아 일하는 시간은 끝나지만 오늘은 항상 오던 앨리스와 마리사도 오지 않았다. 종료 전 빈 시간은 의외로 긴 것으로, 평소보다 좌우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멀리서 낯 익은 모습을 바라봤다.
“아,”
한마디 그렇게 말한 것 만으로 시선의 끝 여성은 이쪽을 깨달았다. 모습을 확인하곤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전번에는 감사했습니다.”
가까워지며 한마디. 그냥 지나가려는 여성의 옷자락을 도르는 슬그머니 잡았다.
“저… 조금 드시고 가시지 않을래요?”
“…꽤나 무리한 호객행위네요. 죄송하지만 가진 돈이 없어서.”
화가 난 듯한 표정의 여성에 도르는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제가 낼테니 어떠세요? 조금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괜찮습니다.”
똑바로 여성과 시선을 맞춘 뒤 몇 초, 도르의 의사가 바뀌지 않는단 것을 깨닫고 여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조금 뿐이에요.”
여성의 말에 도르의 표정은 환해지고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주문한다. 잠시후 나온 화과자를 손에 들고 나오면, 여성은 특등석에 앉아있었다.
가버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던 도르는 안도의 숨을 내뱉고, 화과자를 여성 옆에 두었다.
“당신은 앉지 않나요?”
왼쪽에 앉지 않고, 언제나처럼 오른쪽에 선 도르를 보고 여자는 의문을 던진다.
“저는 일 중이라서…”
“앉으세요.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일이죠?”
도르는 조금 생각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여성의 왼쪽에 앉았다. 화과자를 한입 여성이 먹는다. 기대 이상의 맛이었는지 작게 맛있다고 들리자 도르는 여성을 본다. 그러나 시선을 느낀 여성은 곧바로 그럭저럭이네요, 라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거죠?”
“아, 네. 전에 이름을 듣지 못해서요.”
“…솔직히 또 만날 줄 몰랐습니다. 저는 샤메이마루 아야, 신문 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는 도르 스칼렛이라고 합니다.”
스칼렛이란 단어에 아야는 짐작가는 것이 있는지, 중얼거렸다.
“저 호수에 이사온 서양 흡혈귀 일족인가요.”
“아, 아니요, 저는 다릅니다.”
도르의 대답에 아야는 순간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그다지 관심은 없는 듯 아까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반면 도르는 아야의 커다란 검은 날개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저, 아야 씨는 종족이 뭔가요?”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까? 뭐, 상관없지만. 보시는대로 저는 카라스 텐구입니다.”
“…텐구?”
텐구. 도르의 지식이 맞다면 텐구는 코가 긴…
“말해둡니다만,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텐구는 다른 거에요.”
생각하는 것을 읽히자, 도르는 놀라 아야를 바라본다.
“자주 듣는 얘기지만 코가 긴 텐구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별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것도 아니에요.”
생각하던 것을 계속해서 읽히자 도르는 아연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뛸 듯이 기뻐한다.
“아야 씨 굉장해요! 방금 대화로 그렇게나 알다니!”
도르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아야는 기가 막혀했다. 한숨을 내쉰다. 불쾌하게 만드려 했는데, 라고 중얼거렸지만 그 중얼거림은 도르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아야 씨는 레이무와 아는 사이인가요?”
지난 번 만났을 때 아야는 하쿠레이 신사에서 날라온 것을 도르는 알고 있다. 그 일을 생각하고 물어보았지만, 아야는 다른 것을 깨달은 듯 했다.
“…그렇습니다만, 오히려 그대야말로 레이무 씨와 아는 사이입니까?”
아야의 대사에 도르는 무심코 그녀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흥미로움이 동하는 것을 보았다.
“네, 레이무는 얼마 전부터 아는 사이라 자주 신사에 놀러가고 있어요.”
“춘설이변, 아세요?”
갑작스런 질문에 처음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가파른 화제의 변경에 도르는 대응하지 못했지만 신경쓰지 않고 아야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 반응은 알고 있는 거죠?”
“네, 알고는 있지만…”
“부탁합니다! 자세히 알려주세요!”
갑자기 소리를 지른 아야에 도르는 기가 죽었다. 당황한 도르에도 내색하지 않고 아야는 빠르게 토해냈다.
“레이무 씨에게 물어봐도 가르쳐주질 않아요. 더 이상 말할 게 없다는데 너무 심해요. 그걸 끈질기게 물었다고 전투에서 반 죽이고… 진심이였다고요. 어떻게 봐도 저건 손대중도 하지 않았다고요 전혀.”
그 모습에 무심코 도르는 웃어버렸다.
“어… 아, 그,”
“아, 죄송합니다. 아야 씨가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라서… 아까는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죄송합니다, 이쪽이 원래 모습이에요.”
언젠가 아까의 밝은 모습의 아야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지금은 서먹서먹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도르는 가슴에 품었다. 표정을 진지하게 바꾼 아야는 다시 협상으로 돌아온다.
“도르 씨, 춘설이변의 이야기, 해주지 않겠습니까?”
도르 스칼렛은 춘설이변의 관계자, 그것도 거의 해결사의 입장이다. 유유코의 옆으로 달려온 것은 늦었지만, 그 때부터 이변 해결의 끝까지 지켜봤다.
하지만 진실과는 달리 도르 자신은 유카리가 해결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힘을 조금 빌려주었을 뿐. 그것이 도르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사자인 유유코와 해결사인 유카리의 허락 없이 말하는 것을 주저했다.
“음, 죄송합니다, 아야 씨. 제가 그냥 말 할 수는 없어요. 조만간 그 이변을 더 잘 아는 누군가가 올텐데, 허가를 받지 않으면…”
미안한 듯 얘기하는 한편, 도르에겐 또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 일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후 스이카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잠시 이야기할 뿐이라고 생각했던 도르에게 아야의 춘설 이변에 대한 열정은 예상 외였다.
“죄송합니다, 아야씨. 이제 갈 시간이라…”
“안됩니다.”
그리고 도르는 최악의 상대에게 붙잡혔다. 시선을 돌리면, 그곳에는 분명히 의심하고 있는 아야의 모습이 있었다.
왼손에 수첩을 꺼내 취재 모드에 들어간 아야는 자신있게 말한다.
“레이무 씨에게 뭘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달아날 생각이군요? 그렇게 두지 않아요?”
완전한 착각. 하지만 그건 도르에겐 매우 귀찮은 이야기였다. 내용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도르는 아야에게 먼젓번의 이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 약속이 있기 때문에…”
힐끗 가게를 들여다 보면,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종료 시간임을 아는 주인은 간판 아가씨에게 빙긋 웃어보인다. 이제 가도 좋다는 평소의 신호였다. 그러나 아야는 여전히 가려고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군요.”
이미 간파하고 있다는 확신을 눈동자에 품고 아야는 가만히 도르를 응시했다.
“내일 얘기해요. 약속 때문에, 내일 낮쯤 오신다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놓치지 않아요. 그럼 같이 가볼까요?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건가요?”
도르의 팔을 잡고 아야는 멈춰섰다. 어디 말해봐라라는 얼굴로 아야는 바라봤다.
도르는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름이라면 괜찮겠지 생각해서 작게 입을 열었다.
“스이카입니다. 이부키 스이카.”
그 말에 팔을 누르는 아야의 힘이 약해진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손을 내치고 도르는 달아났다. 여기서 도망가지 않으면 귀찮게 될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은 도르는 알지 못했다. 손을 뻗친 채 아야가 기절할듯한 표정으로 생각을 포기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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