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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22화: 영원의 공주
동방영야초
난이도 Normal
동행자 호라이산 카구야
1. 영원의 공주
“플랑을 도르의 몸에서 꺼내는 방법…이라,”
뜨거운 커피를 스푼으로 휘저으며 스이카는 고민하는 목소리를 낸다. 곰곰이 생각하는 그녀를 도르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화제는 여전히 도르와 플랑에 대해서. 상당한 실력자인 스이카라면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유카리조차 해결하지 못했다고? 그렇다면 나도 방법은 없을 것 같아.”
“그렇구나…”
아무래도 스이카에게도 방법은 없는 듯 하고 도르는 그저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고개를 들고,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본다.
“그러면 다른 알 것 같은 누군가 생각나지 않아?”
“음… 그 플랑이라는 애는 도르 안에 있는거지. 그치만, 다른 사람은 느낄 수 없어. 나는 도르의 말을 믿지만, 쉽게 믿겨지진 않지 않을까?”
“…아”
그제서야 도르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은 플랑을 어떻게든 할 방법만 생각하고 있었다. 스이카가 말하는 것은 그 전에 해야할 일. 즉, 플랑이 자신의 안에 있다는 것의 증명.
“유카리는 플랑이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어. 방해받았다. 단지 그 뿐. 그렇지만, 애초에 유카리는 그런 것에 전문이 아니야.”
천천히 잔을 입에 대고 커피를 조금 마신 스이카는 당당하게 미소짓는다. 양식도 나쁘지 않다고 중얼거리고.
“약은 약사에게 라는 오래된 말이 있지. 짐작가는 전문가가 하나 있어. 뭐, 별로 가까이 하고 싶은 녀석은 아니지만…”
“음, 어려우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장소를 알려주면 내가 혼자 가서…”
물론 플랑을 분리할 방법은 몹시도 알고 싶었지만 그 때문에 스이카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스이카는 조금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일단 지인이 있으니까, 도르가 만나도록 주선하고, 당연히 따라갈게요.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 스이카.”
“뭐, 별 거 아냐. 단지 여러 가지 연락을 취해둬야 하니까 당장은 못 가지만.”
“응. 나도 다양하게 알아볼 테니 준비되면 말해줘.”
“음, 그런데 어디를 찾아보려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다. 최근의 날씨는 대체로 맑아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그래… 죽림…일까?”
미혹의 죽림. 환상향의 서쪽에 위치한 광대한 대나무 숲. 그 광대하다는 말은 숲의 면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그 죽림은 들어온 자를 헤매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 않는다. 헤매는 것도 그렇지만, 요괴도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약방에 가 보려고?”
죽림의 안쪽에 있는 영원정은 스이카가 말하는대로 약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약방이다. 소문에 불과하지만 어떤 병도 고치는 뛰어난 솜씨의 약사가 있다고 한다. 마을에서 일하던 중 언뜻 들은 얘기이므로 신빙성은 적지만.
“응, 그런 생각이야. 그렇다 해도… 어떤 병도 고치는 약방이라…”
만약 그런 사람이 이전 세계에 있었다면 자신은 나을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돈이나 시간의 여유도, 그리고 어머니에게 폐를 끼치는 일도 없이…
‘도르,’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생각의 바다에서 깨어난다.
‘만약의 일을 계속 생각해도… 아무 소용도 없어.“
“…그렇지, 미안.”
만약의 과거 이야기를 계속해도 의미는 없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때때로 생각한다. 자신이 건강했다면,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고개를 흔들어 쫓고, 식기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이대로 무언가 하지 않으면 또다시 만약에 대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서둘러 식기를 치우는 도르를, 스이카는 곁눈질로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지만 도르는 깨닫지 못했다.
한 걸음 걸으면 세계가 바뀌고 두 걸음 걸으면 그 세계에 동화되어, 세 걸음 나아가면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말한 것은 마을 사람인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그 말은 분명 잘못된 것 같다.
죽림에 들어간 지 20분. 경치를 즐기며 적당히 걸은 도르와 플랑 앞의 시야에 웅장한 풍경이 보인다. 광대한 부지에 세워진 목조 건물과 안이 들여다보이는 원형 창문이 보였다. 약방, 영원정에 아무래도 생각보다 쉽게 도착한 것 같다. 뒷문…이지만.“
‘들어가 볼래?’
“그래.”
살랑살랑 날개를 움직여 천천히 날아오른다. 창문의 높이는 아마도 두 층 정도일까. 특별한 기색도 없이 창문에 도달해 손을 댄다. 걸리는 것 없이 창문이 열렸다. 아무런 일도 없어 놀랐지만, 작게 실례합니다, 라고 말하고 들어간다. 하지만 창문 가장자리에 발을 디딘 순간 예상치못한 일이 일어났다.
우선, 방이 이층이라고 생각했지만 천장이 매우 높은 단층집이었다. 그러므로 창문에서 바닥까지의 높이가 생각보다 높았다.
두 번째로, 방을 내려다봤을 때 누군가 있었고,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다.
방에 있는 것은 흑발의 예쁜 얼굴의 소녀였다. 놀란 듯 소매를 입에 가져가고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놀란 것은 그녀 뿐만이 아니다. 도르 또한 갑작스러운 일에 놀랐고, 발이 미끄러진다.
“아.”
시야가 뒤집히고 등부터 다다미에 떨어진다. 날개를 움직였지만 늦었는지 충격을 그대로 받고 말았다. 등도 아프지만, 부딪힌 머리의 통증이 더 강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를 눌렀다.
“괘, 괜찮아…?”
“우우…”
반울상이 되어, 시선만 움직이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다. 그녀는 도르의 바로 옆에 서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괘, 괜찮아요.”
머리를 누르며 일어나, 쓴웃음을 짓는다. 흑발의 소녀는 안심한 듯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번에는 우스운 듯 도르를 바라보고 있다.
“괜찮다면 다행이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다니 터무니없는 침입자네. 게다가 떨어지기까지 하다니, 힘은 강하지만 조금 바보인건가?”
마지막에는 이상한 듯 조금 웃은 소녀는 이 세상에는 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도르가 만난 모든 여성의 아름다운 요소. 그 모두를 그녀는 가지고 있고, 숨길 생각도 없다. 그런 소녀는 소매로 입을 가린 채 미소짓고, 방울 소리같은 목소리로 묻는다.
“안녕하세요 침입자 씨, 나는 호라이산 카구야. 빛나는 밤이라는 뜻의 카구야. 조금 특이한 이름일까. 여기, 영원정의 일단은 주인이야. 당신의 이름은?”
카구야라고 자칭한 소녀는 도르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시선을 몇 번이나 옮기며 자기 소개를 했다. 흡혈귀가 신기한 지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특히 보석의 날개에 대해서는 시선을 떼지를 않았다.
“아, 안녕하세요 카구야 씨. 갑자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도르, 도르 스칼렛입니다. 볼 일이 있어 여기에 왔습니다.”
“응? 에이린을 찾아 온거야?”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그리고 도르는 카구야에게 전부 털어놨다. 그녀가 영원정의 주인인 이상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다. 그리고 혹시 에이린이란 인물이 열쇠를 쥐고 있다면 카구야와 친분을 쌓는 것은 나쁘지 않다. 물론 도르는 단순히 그녀와 얘기하고 싶을 뿐이지만.
자신과 플랑의 이야기를 하고 잠시 후, 카구야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무심히 듣고 있었지만, 중반 쯤 플랑의 정신 이야기를 할 무렵에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들었으며, 끝날 무렵에는 어려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과연, 그런 일이구나…”
“믿어주시는 건가요?”
도르에게 있어, 지금의 이야기를 쉽게 믿는 카구야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카구야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믿어. 사실이 아니라면 당신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잖아. 그렇지만, 아쉽게도 아무리 에이린이라도 그건 안될거라고 생각해. 상처의 치료라면 어떻게든 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물어 볼게. 우선 이걸 가지고 가.”
그렇게 말하고 카구야가 건네준 것은 사람 모양으로 잘린 종이였다.
“그걸 가져가면 떨어져 있어도 연락을 취할 수 있어. 나는 이유가 있어서 여기서 못 나가지만, 또 여기에 다시 오라는 것도 좀 그러니까…”
“공주님, 조금 할 얘기가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카구야는 문 쪽을 바라봤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도르에게 돌려 카구야는 당황하며 도르의 손에 종이를 쥐어 준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도르, 지금은 사정이 조금 복잡해. 당신이 들키면 귀찮아져. 시간을 벌 테니, 빨리 창문으로 도망가.”
그 말과 함께 머리가 새하얗게 된다. 갑작스런 일에 당황하는 도르에게, 머릿속에서 호통이 들렸다.
‘도르! 빨리 도망가라고!’
플랑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도르는 뛰어올라 창문으로 향했다. 카구야가 조작했는지 창문이 자동으로 열려 그 사이로 통과했을 때, 카구야가 물었다.
“저기, 도르.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
“네?”
아까까지의 이야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당돌한 질문. 그래도 카구야가 심각한 것은 분위기에서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돌아온 말이 너무 슬프게 들려, 도르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플랑의 다급한 목소리에 도르는 다시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대로 돌아보지 않고 그저 미혹의 죽림을 빠져나갈 수 밖에 없었다. 머리 한 구석에는 카구야의 마지막 말이 떠나지 않았다.
“또 오락인가요? 공주님.”
도르가 쏜살같이 떠난 뒤 카구야의 내실. 문이 천천히 옆으로 미끄러지고, 빨강과 파랑이 섞인 기묘한 옷을 입은 은발의 여성이 들어온다. 여성은 팔짱을 낀 채 곤란한 듯 한숨을 내쉬고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미소짓는 카구야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가 바로 조금 전까지 카구야가 말했던 약사, 야고코로 에이린이다.
“어쩐지 회를 거듭할수록 나의 영원을 깨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네.”
“농담도. 영원을 다루는 공주님이 진심이라면 손도 댈 수 없어요.”
그녀가 말하는 것이 어디까지 사실인가, 카구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에이린은 카구야 이상의 실력자이다. 플랑도 요력이 매우 강하다고 외친, 그녀 이상의 힘. 그래서 도르를 눈치챌까봐 카구야는 두려워했다. 지금 에이린은 카구야가 얽힌 어떤 일로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에이린이 친 결계를 모르고 뚫고 자신한테까지 와버린 도르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일단 보고입니다. 영원정에 둘러진 결계에 근소한 왜곡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의 왜곡으로 침입할 수 있는 요괴는 거의 없지만, 일단 혹시 몰라서 모습을 보러 왔습니다.”
“그래, 수고하네. 보다시피 아무것도 없어. 에이린은 걱정이 너무 많아.”
후후, 하고 미소짓지만 카구야는 내심 초조해했다. 방을 바라보는 에이린의 시선이 창문을 향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요. 게다가 소중한 공주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까요.”
마지막에 부드럽게 웃고, 에이린은 발길을 돌린다. 카구야의 질문에, 그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저기 에이린? 만약에 말이야? 하나의 몸에 두 영혼이 들어가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는거야?”
카구야의 말에 에이린은 돌아서서 똑바로 그녀를 바라본다.
“글세…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그 아이는 매우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이일 것은 틀림없겠죠.”
그 말에 카구야는 먼 발치를 응시했다.
“저기 에이린… 언제쯤에야 나는 미치지 않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카구야의 말이 아까 대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에이린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물어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에이린은 갖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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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새로운 가족과 유카리의 오산
꽃을 피운 벚나무는 내리는 비를 그 꽃과 가지로 막아준다. 그 밑둥에서 흠뻑 젖은 도르와 스이카는 서로 이웃하여 앉아 있었다. 두 명은 특별히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손은 꼭 붙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쉽게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문득 도르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저기 스이카, 스이카는 어디서 살고 있어?”
산 정상 부근의 벚나무 아래. 도르가 스이카를 만나는 곳은 그 곳 뿐이다. 그러므로 도르는 스이카가 어디에 살고있는지 몰랐다.
“음, 집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없어. 나무 위에서 자거나 하고 있어.”
“뭐?! 그, 그러면 감기 걸린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을 짓는 스이카에게 도르는 놀란다. 그러나 그 도르의 반응조차 스이카는 쓴웃음으로 돌려준다.
“아니, 오니가 감기라니… 아니 잠깐,”
갑자기 진지하게 뭔가를 생각하는 스이카를 도르는 옆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몇 초 뒤 스이카는 고개를 들고 눈을 치뜨고 도르를 바라봤다.
“저기 도르, 나는 사실 혼자서만 살아와서 너무 외로웠어. 이런 건 친구인 너한테만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같이 살지 않을래?”
“응? 그래.”
도르는 스이카의 요구에 즉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 왜 그런 것을 묻는지도 생각했다. 그녀는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이카의 오른손이 승리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그럼 그렇게 하자! 정말 기뻐!”
만족스레 웃는 스이카를 보며 문득 생각난 듯 도르는 아, 라고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난 지금 홍마관에 살고 있어서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흠, 그럼 내가 부탁해 볼게. 으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표주박을 기울이는 스이카를 보며 도르는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문이 크게 소리내며 열린다.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서슴없이 들어서는 스이카 뒤에, 도르는 어색하게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플랑은 도르의 머릿속에서 박장대소하고 있다. 스이카는 홍마관의 로비의 문을 열기 전 정문을 먼저 열었다. 물론 메이링에게 인사를 한 뒤지만, 이번처럼 주먹으로 때려 연다는 방법이였기에 메이링은 조금 기절했다. 그 표정을 떠올리고 웃고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지금 그만두길 바라는 도르와 달리, 스이카는 점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금 들어가다가 발길을 멈추고 경이적인 속도로 배후에 이권을 지른다. 갑작스러운 행동의 의미를 몰랐지만, 계속되는 굉음에 시선을 돌리면, 로비의 벽에 사쿠야가 쓰러져 있었다.
“저, 사쿠야 씨!”
황급히 달려가 치유술을 건다. 맞은 부분이 천천히 치유되자 그만하면 됐다고 사쿠야는 손짓하고 스이카는 째려본다.
“호오, 시간을 멈추는 능력? 대단하잖아.”
“그것을 간파하고 공격하는 당신이 더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하하하 웃으며 스이카는 표주박을 기울인다. 한마디 할 때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죽은 병에라도 걸린거냐고 도르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스이카는 눈치채지 못했다.
“뭐, 오니 상대로 잔재주는 통하지 않아. 그것보다도… 바로 도르의 보호자한테 안내해 주실까.”
“보호자?”
“할 말이 있으니까.”
“…침입자를 순순히 안내하라고?”
칼을 들고 살기를 내뿜는 사쿠야에게 스이카는 웃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사쿠야 자신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째려보는 사쿠야의 깨끗한 뺨에 한 줄기 땀이 흘렀다.
“그만 둬. 너는 상대가 안돼. 아니, 정확히는 이 저택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야. 날뛰려고 온게 아니야. 약자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으니까.”
수수하게 도발을 넣자 사쿠야의 관자놀이가 움찔움찔 했지만 곧 그녀는 발길을 돌려 스이카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도르는 쭈뼛쭈뼛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이곳입니다.”
안내된 곳은 알현실. 이변 때 레밀리아에게 거절된 도르에겐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는 방. 그 문을, 사쿠야는 선뜻 연다. 바닥에 펼쳐진 붉은 카펫에 벽에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안쪽의 옥좌에는 흰 흡혈귀.
“아가씨,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침입자는 배제하라고 했을텐데. 게다가 거기 가짜도.”
얼음장 같은 눈으로 노려본다. 도르의 몸이 떨린다. 호흡을… 할 수가 없다.
“너무 비난하지 마. 그 메이드가 나랑 싸우면 그녀가 죽을 테니까.”
그 사이로 들어가, 스이카는 도르를 막아선다.
“무슨 일이지? 약속도 없이 찾아오다니, 상식도 없구나.”
“공교롭게도 그런 풍습은 없거든. 이번엔 보고를 하러 온거다. 여기 있는 도르 스칼렛은 지금부터 나랑 산다. 알겠어?”
“…무슨 소리지?”
마치 정해진 것처럼 말하는 스이카에 도르는 깜짝 놀란다. 그녀가 가려 보이지 않지만, 레밀리아의 목소리에는 분명 노기가 서려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분명 그 가짜는 가짜지만 가짜의 사명이 있어. 진짜를 되찾는 사명이 있다고? 그것을 못하면 죽기로 한거야. 알아? 멋대로 내 눈 밖으로 나가서 죽어버리면 곤란하거든.”
반복되는 가짜라는 말에 플랑이 머릿속에서 분노하며 외친다. 심하게 울리는 머릿속 소리와 조이는 듯한 가슴 통증을 견디며 서있는 것만이 도르에겐 고작이었다.
“아하하! 그 진짜… 즉 플랑을 되찾는 임무만 해결되면 된다는거지? 그러면 문제 없어. 도르는 해낼 거니까. 게다가… 너보다 강한 내가 곁에 있을 거야. 여기 있는 것보단 안심일 걸?”
“…오만한 자신감이네.”
박장대소하며 흥분하는 스이카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는 레밀리아. 두 사람은 언제 격돌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놓칠 것 같아? 이 홍마관의 모든 세력을 상대로 살아남을 것 같아?”
“아까 그 메이드에게도 말했지만… 뭐 상관없나.”
크게 웃고 호리병을 기울여 술을 한 모금.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스이카는 오른발을 바닥에 내리쳤다. 바닥에 금이 가며 소리가 벽을 울린다.
‘우와…’
“왜 그래?”
‘아니… 엄청난 요력이야.“
플랑의 말에 도르는 스이카를 본다. 아직도 요력을 느낄수는 없지만, 플랑이 감탄할 정도의 요력이 방출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 관에서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도르 스칼렛 뿐이야. 나머지는 떼지은 오합지졸에 불과해.”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자랑스럽게 말하는 스이카에게 작은 목소리로 딴지를 건다. 플랑의 반응을 보면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얀 방패가 무참히 부서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나는 아까부터 너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라, 보고하고 있는거야. 오니란 것은 옛날부터 멋대로인 일족으로, 갖고 싶은 건 힘으로 빼앗는거야. 그러니,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 상관없어. 나는 도르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뺏어간다. 거기에… 너 따위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진심이야?”
당장이라도 싸움을 시작할 듯한 레밀리아와 스이카. 그 사이에 끼어든 것은 의외로 보라색의 마녀, 파츄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파츄리는 느린 걸음으로 도르 옆에 선다.
“이 오니가 말한대로 그녀를 막는 건 무리야. 게다가 그녀가 옆에 있다면 도르의 안전은 보장. 적어도 여기에 있는 것보다는. 대신 가끔씩 얼굴을 비추는 걸로. 이거면 괜찮지? 레미.”
“…맘대로 해.”
파츄리의 말에, 레밀리아는 조금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도르의 건에 대해 허가를 내렸다. 그 말에 스이카는 만족하고 도르의 손을 잡고 방을 떠나려 한다. 도르는 목 만을 움직여 뒤에 선 파츄리를 보았다. 시선의 끝에서 파츄리는 무표정인 채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홍마관을 나온 도르는 스이카와 만났던 산에서 그녀와 헤어지고 마을에 왔다. 아무래도 스이카는 두 명이 처음 만난 그 산에 집을 지으려는 모양이다. 그곳이라면 홍마관도 가깝고, 마을도 가까운 좋은 입지이다.
홍마관을 나올 때 즘에는 비는 이미 그치고 있어, 마을에는 물 웅덩이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감미처에 가서 심부름이라도 할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 때 익숙한 얼굴과 우연히 만났다.
“어머, 안녕하세요. 도르 씨.”
검은 날개를 흔들며 서있는 샤메이마루를 보고 도르는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아야 씨. 아까는 마음대로 뛰쳐나가서…”
“아니아니, 괜찮아요. 그것보다 지금 감미처로 가는 건가요?”
“네.”
“흠… 그럼 한가하기도 하니 같이 가실래요?”
샤메이마루와 함께 감미처로 가 할머니에게 말을 걸자 뒤에서 샤메이마루가 목소리를 낸다.
“할머니, 제 의견이다만 바깥에 테이블과 의자, 간이 지붕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도르 씨도 항상 밖에 있고, 밖에서 먹는 멤버도 거의 정해져 있고.”
“흠… 공간적으론 문제가 없다만 돈이…”
“그렇다면 문제 없겠네요.”
비용 때문에 고민하는 할머니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돌아보면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담소를 나누던 유카리, 유유코, 그리고 요우무 세 명이 서 있었다.
“돈에 관해서는… 라기보단 그 설비에 관해서는 저에게 맡기세요.”
“그렇게 할건가? 어차피 너희들이 사용할 테니, 그렇다면 문제는 없어.”
“감사합니다. 그러면 실례할게요.”
힐끗 샤메이마루를 본 유카리는 눈앞에서 틈새를 열고 그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것 참, 굉장하군…”
“유카리의 스키마는 여러 모로 편리하니까요.”
후후 웃는 유유코와 감탄한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할머니. 유유코는 단골이니만큼 몇 번이나 말할 기회가 있어, 친지같은 관계가 되어 있었다. 덧붙이자면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오는 요우무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저기 요우무, 하나 물어도 되나요?”
“왜 그러시죠?”
“유유코 씨는 여기 얼마나 쓰고 계신거죠?”
“…”
도르의 질문에 요우무는 살며시 시선을 피한다.
“듣지 않는게 좋아요. 그래도 예전에 비해 양은 줄었습니다. 유유코 님이 말씀하시길 맛있는 건 배도 빨리 부르다고 합니다.”
요우무의 대답에 도르는 아아, 하고 목소리를 냈다. 도르는 유유코가 먹는 양은 일반인보다 약간 많은 정도라고 생각한다. 설마 월 매출의 1/4가 유유코라고는, 그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것을 얘기하는 와중에, 눈 앞에 다시 스키마가 전개되었다. 안에서 나온 유카리는 할머니에게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상점이 끝난 뒤 밤이라고 말한 것 같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눈 뒤 유카리는 도르 쪽으로 웅크리고 앉아 시선을 맞춘다.
“들었어 도르. 스이카와 같이 살기로 했다며. 그녀의 친구로서 고마움을 표할게.”
“네? 아, 아뇨, 별 것도 아니에요.”
유카리와 스이카가 친구라는 것도 놀랐지만, 유카리가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큰 일을 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도르는 혼란스러웠다.
“그것보다 당신이 여기 있다니 의외네요.”
일어난 유카리는 샤메이마루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유카리를 보며 도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이번에는 기자가 아니라 도르 씨의 친구로서 따라온 것 뿐이에요.”
“어라? 아야 씨도 친구였나요?”
“에?! 아, 아닙니까?!”
눈에 띄게 당황하는 샤메이마루에 도르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저를 싫어하는 듯 보여서…”
“아, 어, 그건, 그, 흡혈귀라는 종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뿐이에요. 도르 씨는 별개.”
“아, 그렇군요.”
샤메이마루의 변명을 간단히 믿은 도르, 유카리는 보이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를 찔렸다. 샤메이마루를 얕보고 있었다. 그녀는 춘설이변에 대해 포기했다.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버리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가까이서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출발은 도르의 친구란 것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도르는 알 길이 없다. 원래 그녀는 의심이라는 감정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도르의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그러므로 유카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견제이다. 저 쪽도 알고 있을 것이다. 유카리가 도르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샤메이마루 혼자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녀가 요괴의 산에 보고하지 않도록 도르의 친구 샤메이마루 아야라고 본심을 숨기며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도르의 친구 야쿠모 유카리 씨.”
샤메이마루 아야도 그것은 마찬가지. 겉치레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두 사람이 향후 관계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동안 도르는 첫 대면이 아닌데도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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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도르 스칼렛 20화: 통하는 진심
동방췌몽상
난이도 Easy
동행자 이부키 스이카
4. 통하는 진심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 수 있다. 시각은 오후지만,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 따뜻한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양산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흐린 날이 지금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솔직하게 기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간판 아가씨의 일이지만 도르의 미소는 없었다. 길 가던 사람들도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 주었지만 도르는 억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가라앉은 마음을 어떻게든 하려고 하늘을 올려다봐도 비가 내릴듯한 검은 구름이 넓어질 뿐이었다.
문득 그 구름에 작은 구멍이 생기고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 무언가는 바로 도르 옆 지상으로 향해 아슬아슬하게 감속하여 눈앞에 내려섰다. 검은 날개를 펄럭이고 나막신 소리를 내며 바람으로 감싸며 나타난 것은 신문기자 샤메이마루 아야. 덧붙여 오늘로 사흘 연속 방문이다. 첫 날은 방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녕하세요 도르 씨. 오늘이야말로 오는 거죠?”
“네. 레이무가 어제 말했다고 했으니까, 곧… 아, 왔어요.”
마치 노린 것처럼 멀리서 세 개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어제의 그림자보다 조금 키가 큰 세 그림자는 곧바로 이쪽을 향해 온다. 콘파쿠 요우무, 사이교우지 유유코, 그리고 아야의 목적인 요괴, 야쿠모 유카리. 유유코와 유카리는 즐겁게 담화를 하며 걸어온다. 요우무는 그 사이에 낄 생각은 없는지 한걸음 뒤에서 걷고 있다.
“안녕하세요 유카리 씨.”
“그래, 안녕 도르. 레이무한테서 얘기를 듣고 왔어. 당신이 신문 기자구나.”
도르의 앞까지 걸어온 유카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다. 사정을 레이무에게 들은 것 같아, 도르 옆에 있는 아야에게도 인사했다. 그때 지은 미소는 도르에게 지은 미소와는 조금 달랐지만 그 차이를 도르가 알아채진 못했다.
문득 보면, 유유코가 손을 흔들고 있다. 유유코는 항상 이렇다. 특별히 대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항상 다정한 미소를 지어준다. 손을 흔드는 행동은 그녀가 조금 장난끼많은 성격임을 말해준다.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면, 유유코는 한 번 끄덕이곤 아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신문 기자씨, 이야기는 안에서 하죠?”
“네? 아, 네.”
유카리에게 이변에 대해 물어보려 생각하고 있던 아야는 조금 당황했지만, 유유코에게 끌려가 감미처 안으로 사라졌다. 요우무도 주인의 뒤를 쫒아 가게 안으로 사라진다. 남은 것은, 유카리 뿐.
“도르,”
단 한마디. 그렇게 불린 도르는 유카리 쪽을 본다. 그리고 알아챘을땐, 눈앞에 유카리의 금발이 있었다. 너무 가까워 놀라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도르는 굳어버렸다.
“스이카는 어제부터 계속 그대와의 일을 걱정하고 있어.”
“…네?”
갑자기 스이카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도르는 당황한다. 하지만 유카리는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스이카는 어제부터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있어. 계속 그대만을 생각하고 있어. 만약 그대의 고민이 요괴와 관련된 거라면, 인간과 관련된 거라면, 자신 때문이라면,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있어.”
“…”
“당신의 고민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이지?”
유카리의 말에 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귓가를 맴돈다. 유카리는 도르의 양 어깨를 붙잡는다. 똑바로 눈을 응시하고, 유카리는 말을 잇는다. 도르가 한 걸음을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흐린 마음을 개이게 하기 위하여.
“도르, 괜찮아. 스이카가 그대를 싫어하는 일은 없어. 비록 당신이 인간이여도 당신은 도르. 그렇죠? 아니면, 당신은 스이카를 믿을 수 없는걸까?”
“그…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면 여기서 고민만 하고 있어서는 해결되지 않아요.”
하늘이 개인다. 유카리의 한마디에 도르는 고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 입구로 향한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마침 눈이 마주친 할머니에게 중간에 빠지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허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와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허용되지 않는 행위. 하지만 할머니는 도르의 눈동자에 확실한 의지를 느꼈다. 엄격한 표정으로 그녀는 외친다.
“어서 서둘러! 도르!”
할머니의 말에 도르는 확실히 끄덕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아야는 황급히 따라가 말리려 한다.
“기다리세요 도르 씨! 아직 이야기가…”
“필요없어.”
단 한 마디. 그렇게 말한 유카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뛰어나가려는 아야를 제지한다. 부채로 입술을 감추고 수상쩍은 미소를 지으며 유카리는 아야에게 경고했다.
“당신이 원하는 건 춘설이변의 전모. 그렇다면 도르는 없어도 상관없어. 그렇지?”
반박은 받지 않겠다는 듯한 말투에 아야는 그저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불안이라는 구름이 걷힌 도르의 마음과는 달리 실제 구름은 비구름이 되어 차가운 비를 뿌리고 있었다. 진흙탕이 된 비탈길을 도르는 한없이 오른다. 몇 번이나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지만 그럼에도 도르는 넘어지지 않았다. 빨리 스이카를 보고 싶어. 빨리 만나고 싶어. 그 일념으로 도르는 산길을 달린다. 그리고 길고 긴 언덕길을 올랐을 때, 그곳에는 비에 젖은 작은 오니가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는 점차 강해지고 거센 소리를 낸다. 그에 지지 않도록 강하고 강하게 외친다.
“스이카!”
도르의 외침에 스이카는 천천히 돌아본다. 그리고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된거야 도르?!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잖아? 게다가 이런 빗속-”
“나, 나 스이카에게 숨긴 게 있어!”
걱정하는 스이카의 말을 가로막고, 도르는 다시 외친다. 겁내면 안된다. 스이카를 믿고 진실을 고백한다. 도르는 그 생각 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나는 확실히 몸은 흡혈귀지만… 사실은 인간이야! 플랑이란 소녀의 몸에 들어간 인간… 그게 내 정체야!”
비 때문에 시야는 흐릿하다. 그러나 스이카가 말문이 막힌 것은 보였다. 스이카가 싫어할까 두려워 하면서도 도르는 열심히 말을 계속한다.
“나는 무서웠어. 내가 인간인 줄 알면 스이카가 나를 싫어할까봐. 그렇지만… 그렇지만 스이카는 이변에 대한 얘기를 해줬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말하지 않으면… 그치만 미움받는것도 무서워서…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젠 도르도 몰랐다. 머릿속에선 플랑이 열심히 응원하고 있지만 그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스이카와 친구로 남고 싶다. 그 생각 만으로 가득했다.
“스이카… 미워하지 말아줘… 스이카와 계속 친구로 남고 싶어…”
오열 섞인 목소리로 나온 그 말이 도르의 마음을 모두 나타내고 있었다. 스이카와 친구로 있고 싶다. 단지 그뿐인 작은 소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수한 마음이 비에도 지지 않고 스이카에 마음에 닿는다.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을 양손으로 닦고 있으면, 물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랐을 때에는 도르의 작은 몸은 감싸져 있었다.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 그러나 강하게 껴안는 힘은 거센 비 때문에 차가워진 몸을 따듯하게 해 주었다.
“싫어…할 리가 없잖아! 네가 요괴가 아니래도, 네가 인간이였다고 해도, 그래도 넌 내 친구 도르잖아?”
껴안는 힘이 더 강해진다 조금 답답했지만 그것이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도르의 마음은 들어차고 있었다.
“너… 바보같아… 그런 일로 계속 고민하다니. 나는 도르의 미소를 좋아해. 그런… 그런 시시한 걸로 싫어질 리가 없잖아. 너는 나에게 친구니까.”
“스이…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계속해서 흐른다. 천천히 손을 스이카에 등에 올려 지지 않을 만큼 힘껏 껴안는다. 친구라고 불러준 스이카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강하게 강하게 껴안는다.
그날, 밤늦게 비가 그치기 전까지 두 사람은 계속 같이 있었다. 그리고 폭우 속에서 껴안고 있던 두 사람의 마음은 진정으로 통하고 있었다.
물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이어 들리는 빗소리에 시선을 돌리면 조금이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나쁜 건 알고 있었지만, 타이밍이 나쁘다. 하지만 그런 일로 도르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도르의 친구, 야쿠모 유카리는 요염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수상쩍게 여기는 카라스 텐구, 샤메이마루 아야는 그녀에게 쭈뼛쭈뼛 말을 걸었다.
“저, 그래서 춘설이변에 관해 말인데요…”
그제서야 처음으로 아야의 존재를 눈치챈 듯 유카리는 시선을 돌렸다. 매우 영리한 머리는 순식간에 정보의 바다에서 상황을 알아차려 곧바로 부채를 손으로 가져간다. 손으로 그것을 펼쳐 천천히 입가에 가져간다. 감미처의 달콤한 향기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이미 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유카리는 친구에서 현자로 태도를 바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샤메이마루 아야, 더 이상 춘설이변에 대한 취재는 그만두십시오.”
“…네?”
아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당연한 것이고, 이 경우 잘못한 것은 틀림없이 유카리지만, 유카리는 반론을 받지 않겠다는 시선과 압력으로 아야에게 경고한다.
“잘 들으세요 카라스 텐구 씨. 이건 충고가 아니라 경고에요.”
요기를 내뿜는 깨끗한 미소에 아야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분명히 확인한 유카리는 다음 순간 손뼉을 친다.
“당신도 기자라면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알아서 좋은 것, 몰라서 좋은 것, 알아서는 안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춘설이변은… 세 번째입니다.”
부채를 접고 테이블에 내리친다. 보이지 않는 결계를 치고 있기 때문에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지는 않았지만, 결계의 안에서는 크게 울렸다. 오른쪽에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화과자를 먹는 유유코와 그 옆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요우무가 이 공간의 이상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아야의 대답을 허용하지 않고, 유카리는 계속 말한다.
“물론 도르 스칼렛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도 춘설이변에 관계자. 따라서 그녀에게 이변에 대해서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유카리가 위협한 후 몇 초, 아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안을 조금 키웠지만, 아무래도 기우였던 것 같았다. 아야는 이해한 듯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인사하고 허둥지둥 가게를 떠났다. 마을에 가장 가까운 괴짜 카라스 텐구. 그렇게 들은 만큼 조금 불안했지만 역시 그녀도 일개 텐구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카리는 안도한 것처럼 숨을 내쉬고, 아직 손대지 않은 다과에 손을 올린다. 조심스레 들어 입에 넣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 차오른다. 몇 번이나 먹고 있지만 이 맛만큼은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입으로 천천히 다른 조각을 가져오며 유카리는 생각한다. 이것으로 아야는 도르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을 것이다. 유카리에게 춘설이변은 그렇게까지 숨길 사건이 아니다. 레이무처럼 아쉬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유코처럼 꺼림칙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문제였다. 도르 스칼렛. 마력과 요력을 전혀 갖지 않음에도 본 적 없는 방어의 기술을 사용하고, 그 정신에 또 다른 소녀가 공존하는 흡혈귀. 만약 그녀가 환상향 전역에 알려진다면, 좋지 않는 생각을 하는 집단이 나올 것은 틀림없다. 게다가 도르는 남을 의심할 줄 모른다. 쉽게 꼬드겨져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것을 막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하얀 방어벽은 확실히 위협이다. 그러나 유카리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 무언가가 도르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녀는 도르를 그냥 친구로 보지 않는다. 도르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찰하고 있었다. 물론 야쿠모 유카리 본인으로썬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유유코를 구해준 은인 도르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샤메이마루 아야에게도 확답을 받았다. 향후 춘설이변에 대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고, 도르에게 집요하게 접촉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하나의 고민이 사라졌다. 그러나 유카리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샤메이마루 아야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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